재일교포
부 록

Copyright (c) 1997-1999, CHO Eui-sung. All rights reserved.
무단 복제(게재, 전재 등) 엄금

저작권에 관한 경고


우리 아버지 이야기
 우리 아버지는 일제하의 충청도에서 1925년에 태어나셨고, 해방직전에 일본으로 건너가셨다. 제가 재수를 하던 1983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까지 결국 고국의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하셨다.
 지금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이 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 술을 잘 드셨다는 기억이다. 역시 한국인이셨나 보다, 굉장히 잘 드셨다. 술을 먹고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는 모습은 다른 교포 가정과 마찬가지고…(^o^;).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성격이 심하셔 한때는 많이 짜증나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집에서는 한국어를 전혀 안 쓰셨다. 어머니가 2세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 교포들은 집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는다. 일본어 능력은 거의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일본어의 "ザ행" 발음은 제대로 못 하셨다. "ぜんぜん(全然)"이란 단어를 "じぇんじぇん"이라고 발음한다고 어머니와 같이 놀리기도 했네(나는 나쁜 자식이다… ^^;). 열받아서 무심코 하는 말은 꼭 한국말이었다. 나를 야단칠 때도 "이놈 짜식!"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좀 때리시오"라고 한국말로 맞장구를 친다(이럴 때만 왠지 한국말). 그 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이놈 짜식"과 "좀 때리시오"는 뭔가 심상치 않은 말로 무서워했었다.
 내가 철이 들어서 우리 나라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소학교 때쯤이었나…) 아버지와 같이 목욕하면 꼭 우리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내가 "우리 나라는 왜 망했었나요?"라고 물으면 "우리 나라는 일본놈의 단 말에 속아서 나라를 잃었단다"라고 대답하신 것이 인상적이다. 또, 옛날의 고향생활을 생각하면서 "우리 나라에선 겨울이 되면 강이 얼어붙어서 스케트를 할 수 있단다", "우리 나라 강은 폭이 넓어서 건너편이 안 보인단다", "우리 나라 산에 가면 호랑이가 나온단다"와 같은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다. 그 중에는 약간 과장된 것도 있었겠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조국이란 곳을 막연하게 상상해 보았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로 가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 있었던 조국의 풍경은 아버지 이야기를 듣거나 일제시대 사진을 보고 만들어낸, 옛날 조국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하루는 내가 한국장기를 어디서 구해 와서 아버지한테 한판 두자고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쾌히 응해 주셨다. 아마 몇십년 만에 장기를 두신 것 같아, 굉장히 신나하시더군. "먹을 때는 이렇게 먹어야 해"라며 말을 먹는 손짓까지 가르쳐 주셨고, "장을 먹을려고 할 때는 '장군'이라고 불러야 돼"라고 하면서 힘차게 "장군" 소리를 부르기도 하셨고….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무엇인가 민족적인 것을 "되찾으려고" 한국어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버지의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지금 이렇게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훌륭한(!) 모습을 어버지에게 보여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무척이나 억울하다. 이 억울함을 헛된 것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의 이 한국어를 지켜 나가야만 할 것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고국의 땅을 못 밟으셔 한이 많으셨겠지만, 아버지가 고국을 떠나신 지 반세기 만에 내가 고국 땅을 밟게 되어 아버지의 한을 푼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한국행은 바로 "회귀"인 것이다.



우리 나라를 이해한 일본 시인
 일본에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라는 시인이 있다.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시인이다. 그가 일제시대 때의 우리 나라에 관해 시를 두 편 짓고 있으므로 여기서 소개해 본다. 하나는 당시의 조선인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읊은 "조선의 처녀들"이고, 또 하나는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읊은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이라는 시다.
 우리는 "일본사람"이라고 들으면 무조건 일제 식민지통치를 긍정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일제시대 때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고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 서는 일본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이 두 편의 시를 통해 알아 주기를 바란다. 우리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 선열들의 피눈물 흘리는 노력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해심 깊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본사람들이 우리 교포들을 도와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의 처녀들
 올해 6월, 경성의 조선인 여학교에서 총독부의 앞잡이인 교장이 학생들의 신망이 두터운 한 교사의 목을 몰래 짤랐다. 작별의 날이 왔다. 강단에 올라선 교장이 얌전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그때
한 명의 처녀가 일어서서 외쳤다
―― 거짓말이다!
또 한 명의 처녀가 이어 외쳤다
―― 그것은 거짓말이다!
―― 거짓말이다!
―― 거짓말이다!
―― 거짓말이다!
모든 처녀들이 강단에 뛰어 올랐다
벨에 걸친 교장의 손을 잡았다
처녀들은 겹쳐지며
붉은 목구멍을 힘껏 벌려
몸부림을 치면서 외쳤다
―― 네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 사과해라!
그때 처녀들은 먼 구둣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다가왔다
처녀들은 걸쇠 소리를 들었다
문이 금이 가는 우지직 하는 소리를 들었다
교장이 쓰러졌다
그 얼굴을 발들이 마구마구 밟았다
헌병과 순경이 몰려 들어왔다
모자끈이 끊어지고
권총 주머니가 날며
장검이 삐걱거리면서 휘어졌다
그리고 그 형용하기 어려운 모든 소음 위에
조선의 쳐녀들의
격렬하게 떨리는 함성이
높이높이
얼버무리기 어렵게 숨기기 어렵게 만세를 불렀다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
신(辛)이여 잘 가거라
김(金)이여 잘 가거라
자네들은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에서 승차한다

이(李)여 잘 가거라
또 한 사람의 이(李)여 잘 가거라
자네들은 자네들의 부모의 나라로 돌아간다

자네들 나라의 강은 추운 겨울에 언다
자네들의 반역하는 마음은 작별의 순간에 언다

바다는 황혼 속에 파도 소리를 높인다
비둘기는 비에 젖어 차고지붕으로부터 날아내린다

자네들은 비에 젖어 자네들을 쫓는 일본 천황을 상기한다
자네들은 비에 젖어 수염, 안경, 구부러진 등의 그를 상기한다

쏟아지는 빗속에 파란 신호등은 들어온다
쏟아지는 빗속에 자네들의 눈동자는 날카로워진다

비는 길바닥에 부어져 어두운 해면에 떨어진다
비는 자네들의 뜨거운 볼에 사라진다

자네들의 검은 그림자는 개찰구를 지나간다
자네들의 하얀 옷자락은 복도의 어둠에 펄럭인다

신호는 빛을 바꾼다
자네들은 올라탄다
자네들은 출발한다
자네들은 간다

잘 가거라 신(辛)
잘 가거라 김(金)
잘 가거라 이(李)
잘 가거라 여인의 이(李)

가서 저 굳은 두꺼운 미끄러운 얼음을 때려 부숴라
오래 막혔던 물로 하여금 솟구치게 하여라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뒷방패 앞방패
잘 있거라
보복의 환희에 울고 웃는 날까지


이 시들의 일본어 원문은 여기를 클릭


Copyright (c) 1997-1999, CHO Eui-sung. All rights reserved.
무단 복제(게재, 전재 등)를 엄금합니다

저작권에 관한 경고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