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가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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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에 관한 경고


제사는 민족 방어선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 본국인보다 오히려 낡은 습관을 유지하는 수가 많다. 오랫동안 일본사회에서 어렵게 살아온 교포들은 자기들의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민족성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교포의 풍습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결혼식이니 장례식이니 뭐니 다 쓰려면 엄청난 분량이 될 것 같아, 여기서는 제사에 관해서만 간단히 적어 보기로 하겠다.
 재일교포들은 제사에 대해서 보통 아닌 집착이 있다. 아마, 일본말을 하고, 일본식 생활양식으로 살고, 점차 일본화되어 가는 교포들에게 제사는 자신의 민족성을 유지하는 마지막 방어선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다. "제사"란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기개가 느껴질 듯하다.
 우리 집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만 지내기 때문에 1년에 세 번만 지내면 되는데, 옛날 그대로 1년에 몇 번씩이나 제사를 지내는 집도 있다니, 참으로 수고가 많겠다(유림이 들으면 희열의 눈물을 흘리겠군).
 일본에서 제사를 지내기에 곤란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달력 문제다. 우선, 일본에는 제사라는 것이 없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음력을 전혀 쓰지 않다 보니, 제사를 지내려면 사회생활을 희생해야 하게 된다. 물론 설날휴가, 추석휴가도 없으므로 그 때는 번거롭게도 따로 휴가계를 내야 한다. 이런 일이 사회생활을 보내는 데 장애가 되어 요즘에는 양력으로 지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설날은 신정으로 대체하면 되겠지만, 추석은 일본에 없기 때문에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설날 제사는 신정으로 지내기로 하고, 추석 제사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음력으로 지내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방법은 옛날 그대로이다. 아니, 그대로라고 하면 약간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옛날식 방법을 비교적으로 잘 보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추석과 설날에는 아침에 지내고, 돌아가신 날에는 한밤에 지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큰 상에 반찬을 나란히 놓고, 반찬에는 고춧가루와 마늘을 쓰지 말아야 하고, 과일 같은 것은 꼭 홀수여야 하고, 첫 번째 줄엔 무엇을 두고, 두 번째 줄엔 무엇, 세 번째는 무엇… 전부 다 위치가 정해져 있고, 밥이 오른쪽이고 국물이 왼쪽이고, 술은 향 위에서 세 번 돌리고, 큰절을 하고, 큰절을 하는 사이에 접시에 둔 젓가락을 다른 접시로 옮기고, 젓가락 옮길 때는 상을 세 번 딱딱 쳐야 하고, 기타 등등…
 일본에서 나서 자랐는데 그런 것까지 다 하느냐고 놀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재일교포의 현실생활이다. 만약에 제사 날을 깜빡하거나 제사의 차례를 잘못한 날에야 "너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하는 어른들의 질책을 받아야 한다.
 좀 화제가 달리지지만, 이 "너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재일교포의 가정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요즘 부모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들의 세대는 이것이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 있다. 특히 어렸을 때, 김치를 물에 씻어 먹으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학교에서 한국인이라고 놀림을 당해 억울하게 돌아오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 부모님에게 말대꾸를 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 뭐 별것 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랐기 때문에 결국은 "난 한국사람이다"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 앞에는 "재일"이라는 두 글자가 항상 달라붙지만 말이다.



"일본놈에게 지지 마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세대는 일제시대 때라 일본사람의 차별이 심한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사람에 대한 대항의식은 만만치 않다. 본국의 젊은이 중에도 일본이 무슨 짓을 하면 "역시 쪽발이는…"이라는 욕부터 나오는 사람이 많지만, 일본사람과 같이 살고 늘 차별을 받아온 재일교포 1세들의 감정은 우리 나라 젊은 사람은 상상이 못할 정도로 절박한 것이며 그런 젊은이들의 욕은 정말이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애를 키우면 어떻게 될까? 우선, 애가 철이 들기 전부터, "너는 한국사람이다"라는 기본관념부터 주입한다. 착한 부모(?)면 애가 커서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어린 아기 때부터 "너는 한국사람이다"라고 아이에게 말한다. 물론 어린 아이는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말을 듣고 자라면 "뭔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한국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사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는 것은 보통 소학교(초등학교) 때이다. 어린애라는 것은 순진한 만큼 잔인하기도 하다. 싸움이 되면 가차없이 "한국놈은 한국에 돌아가라"라고 욕한다. 물론 나도 어렸을 때 그런 소리를 몇 번씩이나 들어왔다. 그럴 때, 대꾸도 안 하고 가만히 집으로 돌아오면 엄청나게 혼난다. "한국사람이라고 부끄러운 건 하나도 없다. 한국사람이라고 놀림당하면 그대로 돌아오지 마라. 일본사람에게 지면 절대 안 된다"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민족차별에 대해서는 필사적인 각오로(!) 싸움을 벌였었다.
 잡에서 어머니의 "민족교육"은 싸움 때 뿐만은 물론 아니다. 하여간 어떤 일에 관해서도 "일본놈에게 지지 마라" 이것이다. "우리 한국사람은 일본사람의 두 배 노력해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었다. 취직에도 차별이 있기 때문에 "변호사가 아니면 의사가 돼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변호사와 의사는 국적과 상관 없이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말은 교포사회에서 상당히 일반적인 것 같다. 나의 친구들에게 물어 보면 어렸을 때 꼭 이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도 나를 변호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법률에 하나도 관심이 없고, 머리도 그다지 좋지 못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언어 방면을 택했는데, 어머니는 상당히 낙심하신 것 같다(하하하).
 이런 식으로, 재일교포 1세들의 원동력은 "일본놈에게 지지 마라"이다. 지금 이런 사고방식을 갖는 2세, 3세들은 드물지만, 과혹한 차별 속을 살아온 1세들은 자기가 무슨 실수를 하면(심지어는 실수가 아니라도) "못된 한국놈"의 낙인이 찍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우리 2세, 3세들은 그러한 1세의 그림자를 이어받으면서도 그것과 또 다른, 더 나은 길을 모색하고들 있다.



집 안의 38선
 조국이 분단되어 있는 관계로, 재일교포의 조직에도 민단(재일본 대한민국 민단)과 조총련(재일본 조선인 총련합회)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상반되는 정치사상을 가진 조직이 본국처럼 사람의 왕래가 전혀 없더라면 이야기가 쉬울 텐데, 한 나라에 같이 살고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재일교포 집단은 민단지지 그룹, 조총련지지 그룹, 무소속 그룹의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지금은 무소속 그룹이 제일 많겠고 조총련지지 그룹이 제일 적겠지만, 지난 시기는 민단지지 그룹과 조총련지지 그룹 어느 한쪽에 속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지하는 조직이 다르면 사회생활상에서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민단을 지지하는 집에서는 자녀를 한국학원에 입학시키고(사실은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저축은 상은(商銀)이라는 민단계 신용금고에서 하고, 민족신문은 "통일일보"를 읽는다. 그것에 반하여 조총련을 지지하는 집에서는 자녀를 조선학교에 입학시키고, 저축은 조은(朝銀)이라는 조총련계 신용금고에서 하고, 민족신문은 "조선신보"를 읽는다. 각 조직마다 교포의 생활을 위하여 학교, 은행, 신문 등을 차리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쉽지가 않다. 바로 "한 나라에서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희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조총련 열열 지지파, 어머니는 민단계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집 안에 38선이 그어지는 셈이다. 옛날에, 북한이 아직 인기가 있었을 무렵에는 집 안에서 정치문제를 가지고 성토(!)가 벌어진다는 웃을 수 없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큰아들은 무관심파, 딸은 일본사람과 결혼해서 한국혐오증, 막내는 일본사람으로 귀화, 이렇게 되면 잡 안에는 모든 민족문제가 응축된 소우주가 되고 만다. 그런 집 안에서는 정치문제 거론 금지가 암묵의 양해가 되어 있다고 한다. 하긴, 집 안에서 끝없이 이데올로기 싸움을 하면 가정이 붕괴되지….
 좀 웃기려고 과장표현을 했지만 사생활에서 실제로 정치문제를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각 조직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인사들은 어떨지 모르나 항간에 생계를 꾸리는 일반 교포들은 남도 북도 없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지지단체와 상관이 없이 "상은", "조은" 양쪽과 거래하는 사람이 많다. 평소에는 같은 교포로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놀고, 웃고 울고 있다. 남이니 북이니 하기 전에 같이 일본에 살고 고락을 같이하는 교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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