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사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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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학 "우리 동창회"
 나의 모교인 와세다(早稻田)대학은 예로부터 한국인 유학생이 많은 학교로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학교이다. 유학생들은 줄여서 "와대"라고 부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소다이(早大)"라고 하며 와세다 학생들은 그냥 "와세다"라고 부른다.
 와세다대의 한국인 유학생의 전통은 한일 병합(신념상 "합방"이란 말은 쓰지 않음)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경 유학생들에 의한 1919년의 2.8 독립 선언문을 만든 이광수도 와세다 출신이다. 이광수가 선언문을 만들 때 이용했다고 하는 모밀국수집 "산쵸안(三朝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해방후는 본국 유학생의 모임인 "한국유학생회"와, 교포학생들의 민족써클인 "한국문화연구회", "조선문화연구회"가 그 전통을 승계하고 있다.
 와세다대를 졸업한 한국인의 동창회가 "우리 동창회"이다. 일본어로는 "우리 도소카이(ウリ同窓會)"라고 한다. 일본어 명칭에서도 "우리"란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데, 이 "우리"라는 단어로부터 알 수 있듯이,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창회이다. 모이는 사람은 주로 교포 아저씨들이지만, 회지를 보니 일제시대에 유학했던 본국인도 회원으로 있다. 냉전이 심했을 때는 통일적인 동창회를 만드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을 텐데, 적어도 "와세다"의 깃발 아래 우리는 하나로 있자는 신념으로 이 "우리 동창회"가 결성되었다고 들었다(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와세다 사람들은 "와세다"를 내걸고 떠드는 것을 좋아함 ^o^;). 와세다대 오쿠마 정원(庭園)에는 "우리 동창회"가 기증한 기념품인 "우리돌"이 있다(정원용의 큰 돌인데, 뭔가 "우리는 돌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군).
 "우리 동창회"는 1년에 한 번 총회(파티)를 여는데, 학부 학생은 참가비가 공짜여서 돈이 없었던 나는 영양을 섭취하러 몇 번 참석해 본 적이 있다. 파티에 오는 사람은 민단 간부도 있는가 하면 조선대학교(조총련계 대학교) 교수도 있어서 얼굴은 다양하다. 다들 화기애애하게 말을 나누지만, 가끔 조직활동에 열성적인 분도 계시다. 단서를 여는 것은 보통 조총련쪽이었다. 조총련계 아저씨가 앞에 나가서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어쩌고 저쩌고…"라고 인사를 하자, 그 다음에 인사하는 민단계 아저씨는 "우리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하고 어쩌고 저쩌고…"라고 대항한다. 학부 학생들은 그것을 들으면서 "또 시작이야"라며 술을 마신다.
 그런 "우리 동창회"도 얼마 전에 드디어 분열되고 말았다. 그러나, 웃지 마시라, 분열의 원인이 남북 대립 때문이 아닌 모양이다. "회장이 오래가서 마음에 안 든다"고 몇몇 회원이 따로 "도스이카이(稻水會)"라는 동창회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세 명 모이면 당파가 네 개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이런 말 본국에서도 하나 모르겠네), 결국은 그런 셈이다. 각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우리의 민족성(?) 덕분에, 지금 와세다대의 한국인 동창회는 "우리 동창회"와 "도스이카이"라는 두 동창회가 이상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죠센(朝鮮)"이란 단어
 우리 어머니는 우리 나라를 가리켜서 "죠센(朝鮮)"이라고 부른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불렀고, 아마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렇게 불러 왔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자기 민족을 비하하는 것도 아닌 우리 어머니가 우리 민족을 가지고 "죠센(朝鮮)"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다.
 요즘 일본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 민족을 가리켜서 "간코쿠(韓國)"라고 말하면 남한측 입장에 서 있으며 "죠센(朝鮮)"이라고 말하면 북한측 입장에 서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그러한 정치적인 입장과 전혀 상관 없이 "죠센"이란 명칭으로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일교포는 해방전부터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당시 사용하던 "죠센"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죠센"이란 단어 자체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사람이 갖는 한국관이 "죠센"이란 단어에 반영되어 어떨 때에는 차별적이 될 수도 있고 어떨 때에는 민족애에 넘친 단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재일교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죠센"이란 단어는 재일교포가 놓여 있는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재일교포는 "죠센"이란 말로 일본사람들에게 차별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런 차별을 받았기에, 바로 "죠센"이란 말로다가 민족적인 자각이 생기고 그 단어를 통해서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우리 민족에 대한 미움과 사랑, 우리가 겪은 차별과 긍지,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것을 이 "죠센"이란 단어는 참으로 교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죠센"이란 단어가 재일교포에게 흙냄새가 풍기고 촌스럽고도 애착이 있는 것은 바로 재일교포의 역사와 상황을 대변하는 듯한 말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일본 국내에서는 우리 민족에 대한 총체적인 호칭으로서 "죠센(조선)"을 쓴다. 민족명은 "죠센 민조쿠(조선민족)", 언어명은 "죠센고(조선어)", 반도명은 "죠센 한토(조선반도)"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한민족", "한반도"에 대응하는 일본어는 없다. 따라서 "간 민조쿠(한민족)", "간 한토(한반도)"라고 말해도 보통 일본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사용되는 "죠센"이란 단어는 우리 민족에 대한 멸시감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 중립적인 단어임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일본에 가 본 사람 중에는 일본사람이 주저없이 "죠센"이란 단어를 써서 반감을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위와 같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본국사람들은 엉뚱하게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될 뿐더러 그러한 사고방식은 분명히 그릇된 것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 나라에서 "죠센"이라고 하면 일본사람이 우리 민족을 멸시해서 부르는 차별적인 명칭으로 TV 드라마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지만, 이것은 의도적으로 상당히 왜곡된 표현이다. 물론 차별적인 뉘앙스로 "죠센"이란 말을 내뱉는 일본사람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우리가 "일본"이란 단어를 쓸 때 "일본놈"이라고 하듯이 "일본"이란 단어가 중립적인 말인데도 사용법에 따라 나쁜 뜻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죠센"이란 단어도 사용법에 따라 나쁜 뜻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시기 일본사람이 우리 민족을 멸시해서 부를 때는 "죠센징"이 아니라 "센징(鮮人)", "한토징(半島人; 반도인)", "여보(한국인이 '여보'라고 사람을 부르기 때문에 나온 말)"와 같은 단어를 즐겨 사용했었다. 우리 재일교포들이 (그리고 일본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죠센"이란 단어가 우리 나라에서 근거도 없이 엉뚱하게 낮추어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큰 충격을 받았고 분노조차 느꼈다. "죠센"이란 단어는 차별어도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단어를 마치 차별적인 표현인 양 유포시키는 태도는 날조와도 가깝고 이와 같은 잘못은 조만간 고쳐져야만 한다.
 단, 한가지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하는 점은 이 "죠센"이란 말이 어디까지나 일본어로서의 "죠센"이지, 한국어의 "조선"이 아니란 점이다.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일본어의 "죠센"과 한국어의 "조선"은 포함된 뜻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본어로 "와타시와 죠센징다(나는 한국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나는 조선인이다"라고 하면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저는 재일교포로서 일본어로 말을 하니까 "죠센징"이지,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로 말을 할 때는 "한국인" 이외의 어떤 존재도 아닌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오늘도 당당하게 "죠센징"으로 살고 계신다.



"세이와카이(成和會)"란 무엇인가?
 앞에서 일본인으로 귀화한 교포가 지금까지 16만명 정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귀화"라는 것을 현상면에서 파악하면 "일본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은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해외교포는 일본 말고도 미국, 중국, 러시아 등지에 많이 있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현지의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재미교포의 국적은 미국이며 중국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미국인, 중국인으로서 자부심까지 갖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은 다민족국가로, 개인은 자신의 민족성을 유지하면서 살 기회가 기본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 사정은 우리 나라와 매우 비슷하다. 일본에서 일본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민족성을 부정하고 일본민족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재일교포가 귀화하려면 한국이름을 버려야만 했다. "김"이나 "이"라는 일본사람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민족성이란 것은 말하자면 한사람 한사람이 갖고 있는 개성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부정당하고 일본사람임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일본사람으로 귀화한 교포들은 꼭 일본을 사랑해서 귀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일본사람들과 원활하게 사업을 하기 위해서 귀화했고, 어떤 사람은 일본에서 사는 편의상 일본사람으로 있는 것을 선택했고, 어떤 사람은 자녀들의 장래를 우려해서 미리 귀화를 했다.
 그렇게 어렵게 귀화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재일교포"로 간주되지는 않을 뿐더러, "제대로 교포로 살고 있는" 교포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귀화는 해 보았지만, 귀화를 하지 않은 교포로부터는 "민족반역자" 취급을 당하고 일본사람으로부터는 여전히 "한국놈" 취급을 당하는 신세이다. 어느 쪽 취급도 너무나 매정하고 잔인하다. "일본사람"의 일원이 되었는데도 일본사람은 가짜라고 하고, 같은 피가 흐르는 겨레에게는 배신자라고 뒷손가락질을 받는다. 결국 귀화교포는 기존에 교포사회에 참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본사람들은 여전히 차별을 하니 갈 데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귀화동포 자녀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 귀화동포가 얼마나 구석에 몰리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한 예이다.
 "세이와카이(成和會)"는 그런 귀화동포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이다. 이쪽에도 갈 수 없고 저쪽에도 갈 수 없는 동포가 그 자리에서 다시 자기들의 현주소를 직시하자고 만든 조직이다. 일부 귀화동포 중에는 "모처럼 어렵게 일본사람이 되었는데 여기 와서 자기는 한국사람이라고 밝히고 왜 차별을 받는 짓을 하냐" 하고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일본 속담에 "목구멍을 지나가면 (음식의) 뜨거움을 잊어 버린다"란 말이 있는데, 편해지면 그 때까지의 괴로움을 잊어 버리는 사람들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귀화의 규제가 완화되어 한국이름을 가지고 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흐름이다. 자기의 민족성을 부정하는 귀화로부터 민족성을 지키는 귀화로, "귀화"가 가진 의미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재일교포의 민족성은 다양한 축(軸)이 있다. 남이냐 북이냐 하는 축이 있는가 하면 조국땅이냐 일본땅이냐는 축도 있고, 한국사람이냐 일본사람이냐라는 축도 있다. 재일교포의 민족성은 그러한 다양한 축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만들어진다.



빠찡꼬, 불고기, 고철상
 지난 시기, 재일교포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고생이 많았다. 직업상에서 차별이 심했기 때문이다. 소위 "1류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취직을 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동경대학이라고 하면 장래가 약속된 초1류대학이라고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교포의 경우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동경대를 나와도 취직을 못해, 어쩔 수 없이 가업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기서 가업이란 교포가 사회적 차별 속에서 겨우 겨우 먹고 살아온 직업들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사람들이 하지 않는 직업들인데, 빠찡꼬집, 불고기집, 고철상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비교적으로 많다.
 해방전에 군수공장, 항구 등에서 육체노동에 종사한 사람이 많은 관계로, 해방후에도 그러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그 중에는 노가다로 돈을 모아 토목회사를 만든 운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재일교포의 대표적인 직업의 하나가 빠찡꼬집이다. 빠찡꼬는 흔히 "슬롯머신"이라고 소개되지만, 그것보다는 핀볼에 가깝고 도박성이 있는 어른의 오락이다. 도박이 있는 곳에는 깡패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일본사람들은 이 직업을 하려고 하지 않아, 그 빈틈을 교포들이 메운 셈이다. 일본에는 빠찡꼬집이 굉장히 많은데 그 절반 이상은 교포가 아닐까 생각된다. 빠찡꼬집 건물에 불고기집이 같이 있으면 틀림없이 교포가 하는 가게이다.
 불고기집도 교포가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일본어로 "야키니쿠야(燒肉屋)"라고 한다. 불고기는 우리 나라 불고기와 전혀 달라, 간을 하고 구운 다음에 먹기 전에 양념간장에다 찍어 먹는다. 불고기집에 가면 "김치", "갈비", "상추" 등 한국어가 그대로 사용되며 이런 단어들은 이제 일본어로 정착되어 있다. 곱창, 대창구이는 "호루몽야키(ホルモン燒)"라고 한다. 직역하면 "호르몬 구이"가 되는데, 여기서 "호르몬"은 동물이 분비하는 그 "호르몬"이 아니라 오사카 사투리인 "호루몽(버리는 것)"이 어원이라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원래 내장을 먹지 않고 그냥 버렸었는데 그것을 교포들이 주워 와서 먹었기 때문에 "버리는 것 구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호루몽야키"는 재일교포가 만든 자랑스러운 문화이다.
 최근, 재일교포의 취직상황은 많이 나아졌다. 70년대에 있었던 취직차별 소송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히타치라는 회사에 입사한 교포가 차별 대우를 받아 소송을 일으킨 것이다. 그 후로 취직차별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은 교포도 일본사람과 대등한 기회가 주어져 있다.
 오늘날에 재일교포가 편안히 살 수 있는 것은 선인들이 흘린 피와 눈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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