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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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의 조정(措定)에 대하여

 일본의 한국어 학계에서는 어기(語基)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한국어 용언의 활용을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이 페이지에서는 한국 국내에서 생소한 어기론을 간단하게 풀이해 보고자 한다.

 1. 어기의 개념과 활용체계 
1.1 어기활용의 개념
 한국어 용언의 어형은 어간과 어미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먹는다, 먹으면, 먹어서'와 같은 어형에서 어간으로 '먹-'이라는 동일한 형태를 삼는다.
 이에 반해 어기론에서 어간은 항상 동일한 형태로 보지 않고 몇 가지 이형태를 가진다고 본다. '먹는다, 먹으면, 먹어서'의 경우면 '먹-, 먹으-, 먹어-' 부분을 어간으로 삼고 세 가지 이형태를 가진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한국 국내에서 보통 어미의 일부로 간주하는 '-으-', '-아-/-어-'라는 부분을 어기론에서는 어간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이때 '먹-', '먹으-', '먹어-'와 같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낱낱 어간의 이형태를 어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어기론에서 어간은 어기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어기론의 이론적인 문제점에 관해서는 "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의 조정(措定)에 대하여"에 양보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어기활용의 체계를 더 자세히 보기로 한다.
 어기론에서 어간은 세 가지 이형태로 구분하는데, 어근 그대로인 형태를 제Ⅰ어기, 어근에 '-으-'가 붙은 형태를 제Ⅱ어기, 어근에 '-아-/-어-'가 붙은 형태를 제Ⅲ어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중세국어의 경우, 어근에 '-오-/-우-'가 붙은 제Ⅳ어기도 인정한다).
1.2 어간과 어미
 한국 국내의 문법론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미, 접미사(선어말어미, 보조어간)는 '-면∼-으면', '-았-, -었-'처럼 이형태를 성정하지만 어기론에서는 '-으-', '-아-/-어-'를 어간에 소속시키기 때문에 어미 형태는 '-면', '-ㅆ-'처럼 단일한 형태로 표시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어미, 접미사는 그것이 어느 어기에 붙는지 미리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도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다. 예를 들면 '-고'는 반드시 제Ⅰ어기에 붙고, '-면'은 반드시 제Ⅱ어기에 붙고, '-서'는 반드시 제Ⅲ어기에 붙는다고 설명되며 이것을 표시하기 위해 각각 'Ⅰ-고', 'Ⅱ-면', 'Ⅲ-서'와 같이 표시한다. 따라서 어기론에서는 어미, 접미사가 어느 어기에 붙는가 하는 것도 어미 정보로서 중요한 뜻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위에서 든 정격어간인 자음어간과 모음어간의 활용과 함께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어간 종류용 례 제Ⅰ어기제Ⅱ어기제Ⅲ어기
자음어간받다 받-받으-받아-
얻다 얻-얻으-얻어-
모음어간보다 보-보아-
주다 주-주어-
후속 어미,
접미사
-고, -느냐
-겠- etc.
-면, -니
-시- etc.
-서, -Ø
-ㅆ- etc.
 제Ⅲ어기에 붙는 어미 중에서 '-Ø'는 "제로 어미", 즉 아무 것도 붙지 않는 형태를 가리킨다. '-Ø'를 설정함으로써 '-아/-어' 그대로의 형태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1.3 ㄹ어간과 으어간
 어간말에 받침 'ㄹ'을 가진 용언은 국내에서는 변격활용 용언으로 보지만 어기론에서는 'ㄹ어간'이라고 부르고 정격활용 용언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견해는 변격활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문제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어간말에 받침 'ㄷ'을 가진 용언 '묻다'(問)는 '물으면, 물어서'와 같이 활용하지만, 이 단어가 변격용언으로 간주되는 것은 이 단어가 원형으로부터 활용된 어형을 확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정격용언인 '묻다'(埋)는 원형에서 '묻으면, 묻어'와 같이 어형을 확정할 수 있으나 '묻다'(問)는 확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알다'와 같은 경우 받침 'ㄹ'을 가진 용언은 예외없이 규칙적으로 하나의 활용체계를 보여 주기 때문에 어기론에서는 이것을 정격용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간말에 모음 'ㅡ'를 가진 용언은 정격용언 '으어간'으로 간주한다(단 이경우 변격용언으로서 '르변격'과 '러변격'이 있다).
어간 종류용 례 제Ⅰ어기제Ⅱ어기제Ⅲ어기
ㄹ어간알다 알-∼아-알아-
멀다 얼-∼어-얼어-
으어간따르다 따르-따라-
쓰다 쓰-써-
후속 어미,
접미사
-고, -느냐
-겠- etc.
-면, -니
-시- etc.
-서, -Ø
-ㅆ- etc.
 ㄹ어간은 모음어간과 마찬가지로 제Ⅰ어기형과 제Ⅱ어기형이 동일하다. 그 대신 ㄹ어간은 제Ⅰ, Ⅱ어기에서 받침 'ㄹ'이 탈락되는 형태와 탈락되지 않는 형태의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후속되는 어미, 접미사의 두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어기활용과 또 다른 체계에 의한 것이다. 'ㄹ'의 탈락과 후속 어미, 접미사의 두음의 관계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ㄹ이 탈락되는 것ㄴ, ㄷ(일부), ㄹ(받침), ㅂ, ㅅ
ㄹ이 남는 것ㄱ, ㄷ, ㄹ(초성), ㅁ, ㅈ
1.4 변격활용
어간 종류용 례 제Ⅰ어기제Ⅱ어기제Ⅲ어기
ㄷ변격듣다 듣-들으-들어-
ㅂ변격덥다 덥-더우-더워-
ㅅ변격짓다 짓-지으-지어-
ㅎ변격그렇다 그렇-그러-그래-
르변격부르다 부르-불러-
러변격푸르다 푸르-푸르러-
하변격하다 하-하여-/해-
후속 어미,
접미사
-고, -지
-겠- etc.
-면, -니
-시- etc.
-서, -Ø
-ㅆ- etc.
 변격활용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렇+으면→그러면', '그렇+어서→그래서'와 같이 설명되는데, 어미 형태를 '-으면, -어서'로 잡으면 '으, 어'가 사라지거나 변화되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고, 어형변화는 특정 어간과 특정 어미의 연결시에 개별적으로 일일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어기론에서는 이러한 어형에서도 어미는 정격활용의 경우와 똑같이 'Ⅱ-면, Ⅲ-서'으로 잡을 수 있고, 어간 형태도 세 가지 어기형을 잡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어형변화를 체계적으로 잡을 수 있다.
1.5 접미사의 활용
 어기론에서는 접미사(선어말어미, 보조어간)도 용언 어간과 마찬가지로 어기활용의 체계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특징이다. 접미사의 활용체계는 용언 어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Ⅰ어기, 제Ⅱ어기, 제Ⅲ어기를 설정할 수 있으며 각 어기 형태를 만드는 방법도 용언 어간의 경우와 똑같다.
접미사 종류 제Ⅰ어기제Ⅱ어기제Ⅲ어기
-겠- -겠--겠으--겠어-
-ㅆ- -ㅆ--ㅆ으--ㅆ어-
-시- -시--셔-
 이와 같은 관찰에서 "읽으셨겠으니"란 어형을 어기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읽으셔ㅆ겠으니
'읽다'의
제Ⅱ어기형
제Ⅱ어기에 붙는
접미사 '-시-'의
제Ⅲ어기형
제Ⅲ어기에 붙는
접미사 '-ㅆ-'의
제Ⅰ어기형
제Ⅰ어기에 붙는
접미사 '-겠-'의
제Ⅱ어기형
제Ⅱ어기에 붙는
어미
 2. 일본어와의 비교 
2.1 일본어 동사의 활용체계
 일본의 전통적인 "국문법"에서는 어기와 유사한 체계로 일본어 동사의 활용을 설명한다. 즉 어간은 항상 동일한 형태로 보지 않고 여섯 가지 이형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 "국문법"에서는 여섯 가지 이형태들을 각각 "미연형(未然形)", "연용형(連用形)", "종지형(終止形)", "연체형(連體形)", "가정형(假定形)", "명령형(命令形)"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체계는 아래와 같다.
활용 종류용 례 미연형연용형종지형연체형가정형명령형
5단활용yomu(읽다) yoma∼yomoyomi∼yonyomuyomuyomeyome
1단활용miru(보다) mimimirumirumiremiro
변격활용kuru(오다) kokikurukurukurekoi
후속 어미,
접미사
-nai
-u/-you 등
-masu
-te/-de 등
-kara 등-node 등 -ba(없음)
 그러나 "국문법"의 체계는 현대 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종지형"(원형), "연체형"(관형형), "명령형"의 세 가지 형태는 사실은 동사 "어간"이 아니라 어간과 어미가 붙은 "어형"이다(yomu의 경우 "종지형"과 "연체형"은 yom-u, "명령형"은 yom-e로 분석된다). 즉 일본 "국문법"의 체계는 어간 차원의 형태와 어형 차원의 형태를 섞어서 묶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시정해서 일본어 동사 어간의 활용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것이다.
활용 종류용 례 제1어간제2어간제3어간제4어간
자음어간yomu(읽다) yom-yoma-yomi-yon-
모음어간miru(보다)
mi-
변격어간kuru(오다) ku-∼ko-ko-ki-
후속 어미,
접미사
-u/-ru
-e/-ro/-i 등
-nai 등-masu
-Ø 등
-te/-de 등
 이와 같이 볼 때, 일본어 동사의 활용체계와 한국어의 그것이 그 체계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어 제3어간은 한국어 제Ⅲ어기와 마찬가지로 '-Ø'가 있다는 것까지 비슷하다.
2.2 일본어 화자에 대한 한국어 교육의 관점에서
 위에서 본 것처럼 일본어 동사의 활용체계가 한국어와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은 일본어 화자가 한국어를 배우는 데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용언 어간이 몇 가지 이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 어미나 접미사도 활용체계를 가진다는 점, 어미나 접미사가 어느 어간 형태에 붙는지 정해져 있다는 점이라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공통점은 서양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일본어 화자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한국어 교육의 관점에서 보아도 어기를 이용한 한국어 용언의 할용체계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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