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의 조정(措定)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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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연세대학교 박사과정 유학중에 수업 레포트로 제출한 것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글은 일부에 한글 옛 글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새굴림’ 등 옛 글꼴이 없으면 옛 글자가 깨집니다.


0. 머리말
1. 어간과 어미
    1.1 한국어 용언의 어간과 어미의 정의
    1.2 ‘-으-’의 소속에 관련된 문제
2. 어간과 어미의 경계
    2.1 ‘-으-’와 어간의 융합 형태
    2.2 어간과 관련된 인구어의 정의
    2.3 인구어 thematic vowel과 한국어 Bindevokal의 ‘-으-’
    2.4 ‘-아-/-어-’에 관련된 문제
3. 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 설정의 재검토
    3.1 한국어 어간의 구분
    3.2 ‘어기’와 성조
마무리
참고문헌

0. 머 리 말

이 글은 현대 한국어의 용언 어간을 조정(措定)하는 데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약간의 고찰을 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관해서는 국내외에서 여러 견해가 있다. 여기서는 어간 설정에 관한 국내외의 과거의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의 설정에 관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어간과 어미

1.1 한국어 용언의 어간과 어미의 정의

현대 한국어에서 용언은 보통 어간과 어미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용언 '먹는다'에서는 '먹-'이 어간이고 '-는다'가 어미이다. 일반적으로 용언에 있어서 앞 형태소는 어간이라고 불리며 뒷 형태소는 어미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과 어미의 규정에 관해서 국내외의 몇 가지 견해를 아래에 간단하게 소개해 보기로 한다:

a) 국내 b) 국외

위의 정의들은 세부에 있어서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용언 어형에서 어휘적 의미를 맡는 앞쪽 부분을 어간, 문법적 의미를 맡는 뒤쪽 부분을 어미라고 본다는 기본적인 견해는 공통되고 있다.

1.2 ‘-으-’의 소속에 관련된 문제

어간과 어미에 관해서 국내의 견해들을 정리하면 활용에 있어서 변화의 중심을 이루는 뒷부분을 어미로 보고, 그 앞 부분에서 원칙적으로 형태적인 변화를 하지 않는 부분을 어간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이리한 견해에 따라 용언 어형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어간과 어미가 분리, 추출되게 된다:

어 간
어 미
보-
보-
보-
-고
-면
-아서
 
어 간
어 미
먹-
먹-
먹-
-고
-으면
-어서

여기서는 ‘보-’, ‘먹-’을 변화하지 않는 요소, 즉 어간으로 보고 그 뒤에 붙는 부분을 변화하는 요소, 즉 어미로 보고 있다. 또 어미에 관해서 언급하자면 ‘보-’에 붙는 ‘-면’, ‘-아서’와 ‘먹-’에 붙는 ‘-으면’, ‘-어서’는 각각 변이형태로 인정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면’이라는 어미는 ‘-면∼-으면’이라는 두 가지의 변이형태로 나타나고 ‘-어서’라는 어미는 ‘-아서∼-어서’라는 두 가지의 변이형태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는 것이며, ‘먹-’처럼 어간이 자음으로 끝나는 용언에서 ‘-으-’, ‘-아-/ -어-’라는 부분은 어미에 소속되는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으-’에 관해서 눈을 돌려 보면, 최현배(1994:168-173)에서도 자세하게 기술되고 있듯이 그 소속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 적지 않은 논의가 있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이 ‘-으-’를 어간에 소속시키느냐, 어미에 소속시키느냐, 아니면 독립된 형태소로 인정해서 어느 한쪽에도 소속시키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하나의 접미사(보조어간)로 보는 견해

(2) 어간에 소속시켜 어간의 일부분으로 보는 견해

(3) 어미에 소속시키며 '-으-'가 없는 형태의 변이형으로 보는 견해

(4) 하나의 형태소로 보면서 어미에 소속시키는 견해

‘-으-’가 알타이 제어의 Bindevokal(연결모음)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과 같이 하나의 접미사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또 (4)처럼 ‘-으-’를 하나의 형태소로 인정하는 견해도 ‘-으-’가 용언의 어휘적 의미나 문법적 의미를 변별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을 독립된 형태소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리하여 (2) 내지는 (3)이 가장 유력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으-’를 포함한 어형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로서 모음으로 끝나는 어근에서 원래 있었던 ‘-으-’가 탈락되었느냐, 아니면 자음으로 끝나는 어근에서 ‘-으-’가 삽입되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간노(1997:8)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적으로 볼 때 ‘보으면’ → ‘보면’, ‘알으면’ → ‘알면’이라는 탈락 과정은 전혀 확인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으-’가 어근과 어미 사이에서 자음 충돌을 피하기 위한 Bindevokal로서 끼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으-’가 삽입되었다고 설명될 수는 있어도 원래 있었던 ‘-으-’가 탈락되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대표형의 문제를 제쳐놓고, ‘-으-’는 탈락되는 요소라기보다 삽입되는 요소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성 있는 견해가 아닐까 싶다.

2. 어간과 어미의 경계

2.1 ‘-으-’와 어간의 융합 형태

용언 어근과 어미 사이에 들어가는 ‘-으-’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알타이 제어의 Bindevokal과 같은 기능을 가진 모음으로, ‘-으-’가 나타나는 조건은 음성적 환경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다.

주지한 바와 같이 자음으로 끝나는 용언 어근 뒤에 ‘ㄹ, ㅁ, ㅂ, ㅅ, ㅇ’으로 시작되는 어미, 접미사와 ‘ㄴ’으로 시작되는 일부 어미가 올 때는 그 사이에 ‘-으-’가 들어가며, 반대로 ‘ㄱ, ㄷ, ㅈ’으로 시작되는 어미, 접미사와 ‘ㄴ’으로 시작되는 일부 어미가 올 때는 ‘-으-’가 들어가지 않는다:

  1. 받-으-리라, 받-으-면, 받-으-ㅂ시다, 받-으-십시오, 받-으-오;
    받-으-ㄴ, 받-으-니;
    받-고, 받-다가, 받-지, 받-노라;
  2. 보-리라, 보-면, 보-ㅂ시다, 보-십시오, 보-오;
    보-ㄴ, 보-니;
    보-고, 보-다가, 보-지, 보-노라.

1.에서는 어근과 어미 사이에 Bindevokal로서 ‘-으-’가 끼여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예시한 바와 같이 정격활용 용언의 경우 ‘-으-’는 어형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는데 반해 변격활용 용언 중에서는 이 ‘-으-’를 형태적으로 추출하기가 어려운 것도 있을 수 있다:

노랗다: 노라-리라, 노라-면, 노라-이; 노라-ㄴ

돕다: 도우-리라, 도우-면, 도우-ㅂ시다, 도우-십시오, 도우-오; 도우-ㄴ

‘노랗다’는 소위 ‘ㅎ변격’, ‘돕다’는 소위 ‘ㅂ변격’에 속하는 용언이다. ‘노랗다’의 경우, 어근 끝에 ‘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으-’가 나타나지 않으며, ‘돕다’의 경우 어근 끝의 ‘ㅂ’과 ‘-으-’가 융합되어 ‘-우-’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변칙적인 형태변화는 역사적인 변천으로 인한 것들이다. 여기서 ‘돕다’의 경우를 특히 문제로 삼자면, 어근의 일부와 ‘-으-’의 융합체인 ‘-우-’는 말하자면 용언 어근의 일부를 자신의 내부에 포함하는 셈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이 ‘-우-’를 ‘-으-’의 등가물, 그 변이형태로 볼 수 없다.[주]

[주] 통시적으로 보면 ‘*도- > 도- > 도우-’와 같은 변천을 거쳤기 때문에 중세 국어 단계에서는 어근 ‘-’과 Bindevokal ‘ㆍ’(아래아)를 형태적으로 따로따로 추출할 수 있지만 공시적으로 ‘도우-’에서 ‘-으-’를 추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결국, 어간과 어미의 경계선을 어디에 긋는가 하는 문제로 되돌아가게 된다. ‘-으-’가 들어가는 형태와 들어가지 않는 형태 사이에 기능적인 차이가 없고 다만 음성적인 환경에 따른 것인 만큼, 원래 ‘-으-’는 관점에 따라 어미에 소속시킬 수도 있고 어간에 소속시킬 수도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도우면'과 같은 예에서 ‘-우-’가 어근의 일부와 ‘-으-’의 융합형태로 현대어로서 형태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어형에서 어간과 어미에 경계선은 ‘도우-면’처럼 ‘-면’ 직전에 긋지 않을 수가 없다.

2.2 어간과 관련된 인구어의 정의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상기해야 할 문제는 어간, 어미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것이다. 1.1에서 한국어 용언에 관해서 어간과 어미의 정의에 대한 여러 견해를 소개했지만, 간노(1997:5)에서는 인구어에서의 어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 어근과 간모음(幹母音)(e/o)으로 이루어지는 기체(基體). 이것에 어미가 붙는다. domin-o-s(라틴어 dominus ‘주인’), λυ-ε-τε
  2. 어간은 한, 두, 세 개의 접미사적 형태소가 어근에 붙는 것을 포함함에 따라 제1차 어간, 제2차 어간, 제3차 어간…이라고 불린다. 어간은 모음으로 끝나는지 자음으로 끝나는지에 따라 모음어간 혹은 자음어간이라고 불린다.
  3. 어미와 어형형성 접미사를 제외한 나머지 그 단어의 어휘적 의미를 가진 어형

한 마디로 말해서 인구어에서 어간이란 굴절어미를 제외한 부분을 어간이라고 부른다. 위의 예에서 그리스어 λυετε(너희들은 푼다)는 λυε-가 어간인데 이 어간은 어근인 λυ-와 thematic vowel(간모음)인 -ε-로부터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이 어간이 ‘어근 + thematic vowel’로 이루어진 것도 있는가 하면 ελυσα(풀었다)처럼 thematic vowel이 없는 어간도 있다(이 경우 어간 ελυ-는 접두사 ε와 어근 λυ-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는 thematic stem(간모음 있는 어간), 후자는 athematic stem(간모음 없는 어간)이라고 하는데, 어근과 어간, 어미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thematic stem (λυομαι)
λυ ο μαι
어 근 간모음 어 미
어 간
athematic stem (ελυσα )
ε λυ σα
접두사 어 근 어 미
어 간

인구어에서의 이러한 정의는 국어학상에서의 정의와 미묘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즉 국어학에서는 어미를 ‘변화적인 요소’라고 보고 어간은 ‘불변적인 요소’라고 보고 있는데 반해 인구어에서 어간은 thematic vowel에 의해 형태가 바뀔 수 있는 ‘변화적인 요소’라고 보는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2.3 인구어 thematic vowel과 한국어 Bindevokal의 ‘-으-’

2.2에서 관찰한 인구어의 어간의 개념을 고려하면서 현대 한국어 용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인구어 문법에서는 어근 뒤에 오는 모음 e/o를 어미에 소속시키지 않고 thematic vowel로서 어간에 소속시키고 있다. 이 관점에 입각하면 현대 한국어 용언에서 Bindevokal인 ‘-으-’를 인구어 문법에서의 thematic vowel에 비정(比定)해서 어간에 소속시켜 어간이 ‘-으-’를 가진 형태와 ‘-으-’를 갖지 않는 형태라는 교체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받-(다)’와 같은 경우, {받-∼받으-}처럼 변이형태를 인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용언 어간에 변이형태를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홀로도비치(1954), 고노(1955), 간노(1997)이다. 이러한 견해들에서는 한국어에서의 thematic vowel로서 ‘-으-’와 ‘-아-/-어-’의 두 가지를 인정하면서 현대 한국어의 어간을 i) thematic vowel이 붙지 않는 어근 그대로의 형태, ii) 어근에 ‘-으-’가 붙은 형태, iii) 어근에 ‘-아-/-어-’가 붙은 형태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홀로도비치(1954)고노(1955)간노(1997)
보-받- 제1어간제1활용형제Ⅰ어기
보-받으- 제2어간제2활용형제Ⅱ어기
보아-받아- 제3어간제3활용형제Ⅲ어기

이 어간 설정 방법에 따르면 위에서 본 ‘도우-’, ‘노래-’와 같이 어근과 ‘-으-’, ‘-아-/-어-’가 융합되어 그 경계가 모호한 용언도 어간의 교체형으로서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다:

 ㄷ변격ㅂ변격ㅅ변격ㅎ변격 르변격러변격
제1형태듣-돕-낫-노랗- 오르-푸르-
제2형태들으-도우-나으-노라-
제3형태들어-도와-나아-노래- 올라-푸르러-

어간에 세 가지 교체형을 인정하는 이 기술방법에 의하면 예를 들어 ‘돕- + -으면 → 도우면, 돕- + -으니 → 도우니, 돕- + -아서 → 도와서’, ‘노랗- + -으면 → 노라면, 노랗- + -으니 → 노라니, 노랗- + -아서 → 노래서’와 같은 어근 어형의 변화는 개별적으로 기술되지 않고 어간의 종류에 따라 어기의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교체형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주]. 그 결과, ‘보면’, ‘받으면’, ‘도우면’, ‘노라면’과 같은 어형에서 어미는 항상 ‘-면’이라는 동일한 형태로 기술되게 된다. 또, ‘-으-’, ‘-아-/-어-’를 어간에 소속시킴으로써 접미사, 어미는 제몇어기에 붙는지가 미리 정해져 있다고 파악된다. 예를 들면 ‘-고’, ‘-다가’, ‘-자’; ‘-겠-’은 항상 제1형태에 붙고, ‘-니까’, ‘-리라’, ‘-ㅁ’, ‘-ㅂ시다’; ‘-시-’는 항상 제2형태에 붙고, ‘-서’, ‘-도’; ‘-ㅆ-’은 항상 제3형태에 붙는다고 설명된다.

[주] 더군다나 {듣-}: /듣-/∼/들-/, {돕-}: /돕/∼/도우-/와 같은 교체는 {앉-}: /안-/∼/안즈-/과 같은 교체와 본질적으로 다른 교체로, 이 두 가지 교체를 현대 한국어의 기술에서 교체의 동일한 차원에서 다루기는 큰 문제가 있을 것이다. 후자의 교체는 현대 한국어의 음운 규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교체되는 것(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맞춤법에서 이러한 교체를 형태음소론적으로 표기한다)임에 반해, 전자는 역사적 근거에 의해 비자동적으로 교체되는 것이다. 홀로도비치(1954)에서 전자를 ‘역사적 교체’라고 부르고 후자의 ‘음성적 교체’와 명확히 구분한 것은 타당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어간의 인식방법을 그림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thematic stem (‘받으면’)
어 근 간모음 어 미
어 간
athematic stem (‘받고’)
어 근 어 미
어 간

결국 간노(1997)에서 고노의 이론에 관해서 지적했듯이, ‘-으-’(그리고 ‘-아-/-어-’)를 어간에 소속시키는 일련의 견해들은 인구어 문법에서의 어근, thematic vowel, 어간의 설정방법을 한국어 문법에 비정한 것이다.

2.4 ‘-아-/-어-’에 관련된 문제

인구어의 thematic vowel인 e/o도 한국어의 '-으-'도 단어의 어휘적 의미 혹은 문법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변별하지 않는 요소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 한국어의 ‘-으-’를 인구어의 thematic vowel에 비정하는 것은 일정한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홀로도비치(1954), 고노(1955), 간노(1997)에서는 ‘-으-’뿐만 아니라 ‘-아-/-어-’도 어간에 소속시키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아-/-어-’는 문법적 의미를 담당하는 유의미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대부분의 견해는 ‘-아-/-어-’를 하나의 어미로 다루고 있으며 ‘-도’, ‘-서’와 같은 어미의 직전에 오는 ‘-아-/-어-’는 그것을 어미에 소속시켜 ‘-아도/-어도’, ‘-아서/-어서’처럼 다루고 있다.

우선, 형태적 관점에서 ‘-아-/-어-’를 관찰해 보기로 한다. '-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어-’도 정격용언의 어형에서 그 형태를 쉽게 추출할 수 있다:

그리고 역시 ‘-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어-’도 변격용언의 어형에서는 어근의 일부와 융합되어 그 형태를 추출하기가 어렵다:

  1. 노랗다: 노래-서, 노래-도, 노래-ㅆ다
  2. 돕다: 도와-서, 도와-도, 도와-ㅆ다

a.에서는 어근 ‘노랗-’의 끝 소리 ‘ㅎ’이 소멸된 데다가 ‘-아-’도 ‘-어-’도 아닌 ‘ㅐ’라는 모음이 출현되고 있어 매우 추상화된 융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용언에서 ‘ㅎ’의 소멸과 ‘ㅐ’의 출현을 어근 끝 소리와 ‘-아-/-어-’의 융합으로서 단순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으-’와 ‘-아-/-어-’는 형태적으로 아주 유사한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아-/-어-’를 어간에 소속시키는 견해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이 문제가 될 것이다.

첫째로, 제1형태와 제2형태의 차이는 음성적인 환경에 따른 ‘-으-’(혹은 그 등가물)의 삽입 여부이기 때문에 제1형태와 제2형태 사이에는 기능적인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제3형태는 제1, 2형태와 기능적인 차이를 보여 주기 때문에 ‘-아-/-어-’를 ‘-으-’와 같이 어간에 소속시켜도 괜찮은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인구어에서 서로 다른 문법적 의미를 가진 어간은 그리스어의 아오리스트(aorist) 접두사 ε-나 라틴어의 완료 접미사 -av- 등 일정한 접사의 첨가에 의해 형성되며 이러한 양상은 한국어에서도 접미사 ‘-시-’, ‘-겠-’ 등에 의해 형성되는 2차적 어간과 공통된다. 그러나 그 한편, 라틴어에서 viv-(살다)에 대한 완료어간 vix-이나 cap-(잡다)에 대한 완료어간 cep- 등은 접사 연결이 아니라 어간 형태의 교체에 의해 어간이 만들어진다. 인구어와 한국어의 활용체계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물론 이러한 예들을 ‘-아-/-어-’에 그대로 비정할 수는 없지만 접사 연결 등 2차적 방법에 의거하지 않는 어간의 교체형이라는 관점에서는 ‘-아-/-어-’를 포함한 제3형태는 어간의 한 가지로 인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둘째로, 제1형태와 제2형태가 단독으로 사용될 수 없는 비자립적 형태인 데 반해 제3형태는 단독으로 사용될 수 있는 독립적 형태라는 점이다. 용언 어형이 ‘어간+어미’로 이루어진다는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단독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3형태는 이 원칙에 어긋나게 보인다. 그러나, 단독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3형태는 간노(1983)처럼 "Ø(제로)어미"가 붙었다고 간주하면 그 모순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주].

[주] Ø형태소의 존재 의의는 ‘유일한 무표성’인데, 제1형태에서 제3형태까지의 각 형태에서 ‘아무 것도 붙지 않는’ 어간은 유독 제3형태뿐이기 때문에 여기에 Ø어미를 설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3. 현대 한국어 용언 어간 설정의 재검토

3.1 한국어 어간의 구분

홀로도비치(1954), 고노(1955), 간노(1997)에서 전개된 이론에 의거해서 현대 한국어 용언의 어간을 설정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여기서부터 제1형태, 제2형태, 제3형태를 간노(1997)의 용어를 빌려 각각 제Ⅰ어기, 제Ⅱ어기, 제Ⅲ어기로 부르기로 함):

1) 정격활용

어간종류용례 I어기 II어기 III어기
자음어간받다받-받으-받아-
모음어간보다보-보아-
ㄹ어간알다알-∼아-알아-
으어간쓰다쓰-써-
후속 어미,
접미사
-고
-겠-
-면
-시-
-서
-ㅆ-

2) 변격활용

어간종류용례 I어기 II어기 III어기
ㄷ변격듣다듣-들으-들어-
ㅂ변격돕다돕-도우-도와-
ㅅ변격낫다낫-나으-나아-
ㅎ변격노랗다노랗-노라-노래-
르변격부르다부르-불러-
러변격푸르다푸르-푸르러-
하변격하다하-해-∼하여-
후속 어미,
접미사
-고
-겠-
-면
-시-
-서
-ㅆ-

모음어간에서는 '-으-'가 삽입되지 않기 때문에 제Ⅰ어기와 제Ⅱ어기는 구별이 없다. 또 ㄹ어간은 모음어간과 마찬가지로 제Ⅰ어기와 제Ⅱ어기의 구별이 없는 대신 또 다른 원리에 따라 어근 끝의 'ㄹ'이 탈락되는 것과 탈락되지 않는 것으로 교체된다. 또, 일반적으로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는 용언의 활용도 어기에 의거한 활용으로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용     례 I어기 II어기 III어기
여쭙다여쭙-여쭈-여쭈어-
그러다그러-그래-
갖다갖-――――――
잡숫다잡숫-――――――
후속 어미,
접미사
-고
-겠-
-면
-시-
-서
-ㅆ-

이 표를 보면 ‘뵙다’, ‘여쭙다’와 같은 ㅂ변격의 ‘변종’은 제II어기에서 일반적인 ㅂ변격 용언과 차이가 남을 알 수 있고, ‘갖다’, ‘잡숫다’와 같은 용언은 제II어기(‘*갖으-’, ‘*잡숫으-’)와 제III어기(‘*갖아-’, ‘*잡숫어-’)가 결여된 용언임을 알 수 있다.

3.2 ‘어기’와 성조

위와 같은 어간 구분 방법에 의거하면, 간노(1997)에서도 간단한 언급이 있듯이, 중세 국어와 경상도 방언의 성조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적지 않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어의 성조는 중세 국어의 경우 단어가 상승 액센트핵을 가진 높낮이 액센트의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경상도 방언의 경우는 하강 액센트핵을 가진 체계), 성조 실현은 어간의 형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래에 중세 국어의 용언 성조체계를 간략이 기술해 본다:

용 례 I어기 II어기 III어기 IV어기
보다(見) 보-·보·아-:보-
다(使) ·-·-·-
내다(出) :내-:내·야-:내·요-
뷔다(空) :뷔-뷔·여-뷔·유-
오다(昇) 오-올·아-올·오-
모다(不知) 모·-:몰·라-:몰·로-
알다(知) :알-∼:아-:알-∼:아-
∼:아·-
아·라-아·로-
삼다(做) :삼-:삼-
∼:사·-
사·마-사·모-
듣다(聞) 듣-드르-드·러-드·루-

이 표를 보면 어근의 성조가 평성이냐, 상성이냐, 거성이냐에 따라서, 그리고 제I어기에서 제IV어기까지의 구분에 따라서 성조가 규칙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음 평성어간인 ‘보-’는 제III어기에서 어근이 거성 ‘·보-’로 교체되는데 종전에 성조 기술에 따르면 접미사, 어미를 하나하나 나열해서 거성화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기라는 어간교체의 개념을 도입하면 매우 간략하게 이것을 체계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용언의 성조는 어기를 이용하면 매우 간결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 기존의 국내 연구에서처럼 복잡한 규칙은 이러한 간결한 도식에 환원할 수 있다.

4. 마 무 리

결국 견해의 차이는 어간과 어미를 어떻게 설정하며 그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는 문제인데, 국내의 견해와 국외의 견해 어느 한쪽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이론이어서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인구어 문법에서의 이론을 기초한 문법기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법기술의 간략화와 체계화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소감이다. 따라서 필자는 현대 한국어 용언 어형을 분석할 때 인구어 문법을 비정한 ‘어기’와 같은 개념으로 어간을 성정하는 방법도 더 평가적으로 검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참 고 문 헌

과학원 언어 문학 연구소(1961) “조선어 문법 1”, 학우서방 번인, 도쿄

김석득(1992) “우리말 형태론”, 탑출판사, 서울

김승곤(1996) “현대 나라 말본”, 박이정출판사, 서울

李翊燮, 任洪彬(1983) “國語文法論”, 學硏社, 서울

鄭然粲(1985) “慶尙道方言聲調硏究”, 國語學會,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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