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버지 이야기
우리 아버지는 일제하의 충청도에서 1925년에 태여나셨고 해방직전에 일본으로 건너가셨다. 제가 재수를 하던 1983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까지 결국 고국의 땅을 한번도 밟지 못하셨다.
지금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이 나는것은 무엇보다 우선 술을 잘 드셨다는 기억이다. 역시 조선사람이셨나보다, 굉장히 잘 드셨다. 술을 먹고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는 모습은 다른 재일동포가정과 마찬가지고…(^o^;). 옛날사람이기때문에 가부장적인 성격이 심하셔 한때는 많이 짜증나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집에서는 조선어를 전혀 안쓰셨다. 어머니가 2세라는 리유도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 재일동포들은 집에서 조선어를 쓰지 않는다. 일본어능력은 거의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였지만 그래도 일본어의 ≪ザ행≫발음은 제대로 못하셨다. ≪ぜんぜん(全然)≫이란 단어를 ≪じぇんじぇん≫이라고 발음한다고 어머니와 같이 놀리기도 했네(나는 나쁜 자식이다… ^^;). 열받아서 무심코 하는 말은 꼭 조선말이였다. 나를 야단칠 때도 ≪이놈 짜식!≫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좀 때리시오≫라고 조선말로 맞장구를 친다(이럴 때만 왠지 조선말).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이놈 짜식≫과 ≪좀 때리시오≫는 뭔가 심상치 않은 말로 무서워했었다.
내가 철이 들어서 우리 나라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였을 때 (소학교때쯤이였나…) 아버지와 같이 목욕하면 꼭 우리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우리 나라는 왜 망했었나요?≫라고 물으면 ≪우리 나라는 일본놈의 단 말에 속아서 나라를 잃었단다≫라고 대답하신것이 인상적이다. 또 옛날의 고향생활을 생각하면서 ≪우리 나라에선 겨울이 되면 강이 얼어붙어서 스케트를 할수 있단다≫, ≪우리 나라 강은 폭이 넓어서 건너편이 안보인단다≫, ≪우리 나라 산에 가면 호랑이가 나온단다≫와 같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그중에는 약간 과장된것도 있었겠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조국이란 곳을 막연하게 상상해 보았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로 가기 전까지 내 머리속에 있었던 조국의 풍경은 아버지 이야기를 듣거나 일제시대 사진을 보고 만들어낸 옛날 조국의 풍경이였던것이다.
하루는 내가 조선장기를 어디서 구해와서 아버지한테 한판 두자고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쾌히 응해 주셨다. 아마 몇십년만에 장기를 두신것 같아 굉장히 신나하시더군. ≪먹을 때는 이렇게 먹어야 해≫라며 말을 먹는 손짓까지 가르쳐 주셨고 ≪장을 먹을려고 할 때는 <장군>이라고 불러야 돼≫라고 하면서 힘차게 ≪장군≫ 소리를 부르기도 하셨고….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무엇인가 민족적인것을 ≪되찾으려고≫ 조선어학을 전공하는것도 아버지의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가지 아쉬운것은 내가 지금 이렇게 조선어를 잘 할수 있게(?) 되였는데 이 훌륭한(!) 모습을 어버지에게 보여드리지 못한다는것이다. 아버지와 조선어로 이야기를 나눌수 없어 무척이나 억울하다. 이 억울함을 헛된것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의 이 조선어를 지켜나가야만 할것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고국의 땅을 못밟으셔 한이 많으셨겠지만 아버지가 고국을 떠나신지 반세기만에 내가 고국땅을 밟게 되여 아버지의 한을 푼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조선행은 바로 ≪회귀≫인것이다.
우리 나라를 리해한 일본시인
일본에 나까노 시게하루(中野重治)라는 시인이 있다. 프로레타리아시인으로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시인이다. 그가 일제시대때의 우리 나라에 관해 시를 두편 짓고있으므로 여기서 소개해본다. 하나는 당시의 조선인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읊은 ≪조선의 처녀들≫이고 또 하나는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읊은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이라는 시이다.
우리는 ≪일본사람≫이라고 들으면 무조건 일제식민지통치를 긍정하는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일제시대때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고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서는 일본사람도 적지 않다는것을 이 두편의 시를 통해 알아주기를 바란다. 우리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평온하게 살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 선렬들의 피눈물 흘리는 노력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리해심깊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본사람들이 우리 교포들을 도와주기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6월, 경성의 조선인녀학교에서 총독부의 앞잡이인 교장이 학생들의 신망이 두터운 한 교사의 목을 몰래 잘랐다. 작별의 날이 왔다. 강단에 올라선 교장이 얌전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그때한명의 처녀가 일어서서 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