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편

≪왜 나를 조선사람으로 낳았어?≫

 어렸을 때 민족적인 갈등으로 고민을 하지 않은 재일동포는 한명도 없을것이다. 그것은 재일동포로서 태여난 숙명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재일동포어린이는 민족학교에 다니지 않고 일본학교에 다닌다. 민족학교의 수효가 얼마 안되는데다가 일본에서 살아나간다면 일본학교에 다니는것이 바람직하다는 부모들의 판단으로 일본학교에 다니게들 된다.
 소학교(인민학교)때, 대부분의 재일동포아이는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 사실을 꺼림칙하게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지 나도 확실히 잘 모른다. 흔히 학교에서 민족차별의 세례를 받아 자신의 민족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때문이라고 설명되지만 꼭 그 이유뿐은 아닐것 같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눈에 띄기 쉬운 표면적인 이유이며 사실은 일본사회가 가지는 재일동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에게 반영되는것이 아닐가 생각된다.
 그래서 일본학교에 있으면 우리 민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느낄 때가 많다. 례를 들어 력사수업시간에 ≪조선≫이라는 단어가 한마디 나오면 기분이 어두워졌었다. 놀리는것을 좋아하는 애는 그 단어만 나오면 나를 보고 낄낄 웃기도 하니 기분이 더더욱 어두워진다. 물론 애들중에는 착한 애들도 있고 학교 선생님은 재일동포에 대해 잘 리해해준다. 그러나 평소에 꺼림칙해하다보니 그런 애들이나 선생님이 긍정적으로 조선이야기를 할 때조차 꺼림칙해져버린다.
 아이가 자신이 조선사람이라는것을 모르는 경우는 더 복잡한 고민이 될수 있다. 다른 동무들과 같이 조선사람을 놀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부모한테서 ≪너는 조선사람이다≫라고 통고를 받아 자기혐오에 빠지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런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아이들중에는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을 미워해서 부모에게 왜 자기를 조선사람으로 낳았느냐고 분풀이하는 애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자기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수가 없는것이다. 갈등의 출구를 찾아내지 못해 현실도피에서 불량학생이 되여버리는 애가 적지 않고 자살을 해버리는 애도 소수나마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차별을 받으면 반발심에서 자기 민족에 대한 (어쩌면 약간 굴절된) 자부심이 생기기마련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정적인 생각에 부속되는, 부작용같은것이긴 하지만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뒤면처럼 부정적인 의식의 뒤편에는 긍정적인 의식이 숨어있는것이다. 숨어있는것이기에 보통 사람이면 간과해버리는 곳에 그러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한 례를 들어보자. 제가 소학교 6학년때, 학교에서 졸업문집을 만들었는데 그 목차를 제가 그리게 되였다. 반 동무들의 얼굴을 삽화처럼 그렸는데 나의 얼굴 밑에는 한글로 ≪조선≫이라고 적었다. ≪조선사람≫이라고 대대적으로 말하고싶진 않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그것을 호소하고싶었던것이다. 또 내 선배의 동생의 경우는 역시 소학교 졸업기년품으로 자기이름이 새겨진 연필을 만들었는데 그때 자기 본명(조선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물론 그 동생은 평소에 일본이름만 써온 애다. 이러한 작은 ≪반항≫을 거듭하면서 재일동포 어린이는 자기의 민족에 대하여 여러가지 고민도 하고 생각도 하고 제대로 된 민족의식으로 발전시키는것 같다.


≪혼혈≫은 ≪half≫가 아니라 ≪twice≫이다

 재일동포는 웬만한 일이 아니면 일본사람을 보고 ≪쪽발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욕을 들은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우리가 ≪조선놈≫ 소리를 듣고싶지 않기때문에 당연히 ≪쪽발이≫ 소리도 하지 않는것이다.
 재일동포중에는 일본사람과 조선사람사이에 태여난 소위 ≪혼혈아≫가 많다. 나의 대학교때 동무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재일동포로서의 고민≫에다가 ≪혼혈아로서의 고민≫까지 있다. 그 고민은 솔직히 말해서 나와 같은 ≪순수한≫ 재일동포들에게는 알수 없지만 그래도 상상하기에 어렵지는 않다. 우리도 ≪나는 조선사람이냐 일본사람이냐≫라고 늘 골치아프게 고민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속에서만 돌아가는 사유의 단계에 그쳐버린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고민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절박한 고민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이러한 동무를 앞에 두고 과연 ≪쪽발이≫ 소리를 할수 있을가? 만약에 할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당장 ≪조선사람≫을 그만두어야만 할것이다. 나는 그러한 편협한 ≪조선사람≫은 필요없다는 신념을 갖고있으니까.
 ≪쪽발이≫ 소리가 아니라도 ≪혼혈아≫들을 대하다보면 생각할바는 많다. 우리는 흔히 ≪우리 조선사람은…≫이라든가 ≪일본사람들은…≫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안이한 이분법적인 언동은 ≪혼혈아≫앞에서 전혀 무의지해진다. 우리가 그런 말을 할 때 눈앞에 있는 그 동무는 전혀 념두에 두지 않기때문이다. 평소에는 그를 조선사람으로 취급하는데 말이다. 그럴 때 자기가 하는 ≪민족≫이란것이 얼마나 부정확한가, 얼마나 배타적인가, 얼마나 사악한가를 느끼지 않을수가 없다. ≪민족≫을 이야기할 때는 사실은 참으로 다양한 존재가 거기에 있다는것을 새삼스레 통감하게 된다.
 요즘 젊은 재일동포들은 ≪조선인이냐 일본이니냐≫라는 정체성의 방황으로부터 점차 해방되고 ≪재일동포≫라는 정체성을 확립시키려 하고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사고방식은 ≪부정적인 량자택일≫로부터 ≪긍정적인 현상확인≫으로 사유의 질적전환이 이루어진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혼혈아≫의 세계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생기고있다. 그것이 바로 ≪half(절반)가 아니라 twice(두배)다≫라는것이다. ≪혼혈아≫는 ≪일본사람도 조선사람도 아닌 반인간이 아니라 두가지 문화를 동시에 갖춘 두배의 인간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눈앞이 활연하게 열린 느낌이였다.
 우리가 우리의 현주소를 똑바로 보면 참으로 다양한 ≪민족≫의 모습이 존재한다는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다양한 존재의 하나에 지나지 않고 그 모습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서 우리의 ≪민족≫의 개념은 새로 출발하게 되는것이다.


결혼

 결혼 ― 골치아픈 문제이다. 70년대중반을 경계로 해서 일본사람과 결혼하는 재일동포가 동포끼리 결혼하는 사람을 웃돌고있다. 일본의 인구가 1억 2000만인데 재일동포는 67만밖에 안되기때문에 단순히 계산해보아도 일본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높긴 하다. 그래도 70년대중반까지는 재일동포끼리 결혼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예전에는 재일동포와 일본사람이 결혼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일본사람의 부모가 재일동포를 멸시해서 결혼을 반대하는것은 물론, 동포 부모들도 ≪일본놈과 결혼이라니≫ 하고 소리를 높여서 맹반대를 하기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심한 경우 부모와 인연을 끊고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재일동포남자와 결혼하는 일본녀자는 조선사람으로 사는것을 강요당하며 반대로 일본남자와 결혼하는 재일동포녀자는 일본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어느 경우든 마음이 아픈 일이다. 우리 외숙모도 일본사람이다. 그래도 조선사람으로 살고있다. 어렸을 때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왜 이런 삶을 강요받아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른다. 민족성을 부정당하는 괴로움을 잘 알고있는 우리 재일동포가 일본사람의 민족성을 죽이고있는셈이니 말이 안된다.
 재일동포와 일본사람이 결혼하는것에 대해서 요즘에는 재일동포도 일본사람도 관대해지고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있는것이다. 쌍방의 차별감정은 여전히 있긴 하지만 옛날처럼 날카로운것은 아니다. 나의 어머니도 제가 어렸을 때는 ≪꼭 조선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라고 하시던데 적령기가 되면 그런 소리를 안하시게 되였다(아니, 그건 내가 너무 많이 나이를 먹어서 누구든 괜찮으니까 빨리 장가가달란 말이였나… ^_^;).
 이제 ≪일본사람이나까 안된다≫, ≪조선사람이니까 안된다≫라는 주장은 완전히 낡은 사고방식이 되여버린 감이 있다. 그래도 젊은 세대는 재일동포와의 결혼에 집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평소에 민족을 운운하지 않은 사람조차 결혼은 될수 있으면 재일동포와 하고싶다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사회적 배경을 갖고있는 사람끼리 결혼하는것이 훨씬 편해서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하물며 재일동포의 ≪사회적배경≫이란것은 일본사람과 결코 공유할수 없기때문에 재일동포끼리 결혼한다는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갖고있다. 아무리 일본사회에 살고 사고방식이 일본인화되고있다 하더라도 정신세계에서 일본인과 재일동포는 거리가 너무 멀다.
 재일동포와 일본사람의 결혼은 하나의 ≪시도≫이다. 옛날과 달리 서로의 민족성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시도이다. 말하는것은 쉽지만 행동하려면 어렵다. 부부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물론, 태여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갈것인가도 큰 쩨마가 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민족관≫의 모색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금 재일동포는 ≪과거≫에 매달리는 민족관을 버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민족관이 필요한 단계에 놓여있다고 할수 있다. 재일동포와 결혼하든 일본사람과 결혼하든 재일동포는 개인개인이 갖고있는 민족성과 마주서서 자문을 해야 하는것이다. 비틀즈의 ≪엘리너 릭비≫란 노래가사에 있지 않겠는가, ≪모든 고독한 사람들,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모든 고독한 사람들, 그들은 어디에 속하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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