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동포는 우리말을 할줄 아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못한다. 지금 재일동포는 본국에서 직접 온 사람들, 즉 1세의 비률이 10%를 밑돌고 2세이후의 세대가 압도적다수를 차지하고있다. 1세는 본국에서 태여났기때문에 당연히 우리 말을 할줄 안다. 그러나 일본에서 태여난 2세, 3세들은 우리 말을 할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지금 재일동포들의 실생활은 일본어로 영위되고있다.
조선사람이면서도 우리 말도 못하느냐. 본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재일동포의 실정을 리해하지 않는 짧은 생각이다. 재일동포는 재미동포나 중국의 조선족과는 달리 모여사는 경우가 드물며 항상 일본사람에 둘러싸여 산다. 길 다니는 사람은 물론 학교에서도 일본말밖에 쓰지 않고 동무도 일본말밖에 모르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애인조차 우리 말을 모르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말을 지키며 쓰려고 하면 피눈물을 흘리는 보통 아닌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자기자신은 우리 말을 지킬수 있더라도 자식들은 태여나면서 일본말의 바다속에 몸을 맡기는데 어떻게 류창하게 우리 말을 할수가 있을가?
젊은 세대중에는 자기들이 우리 말을 못하는것을 갑갑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우리 말을 배울 기회가 아주 적다는것이 실정이다. 총련과 민단이 운영하는 민족학교에 다니면 어느정도 우리 말을 할수 있게 되지만 일본사회에서 사는 편의상 자녀를 민족학교에 다니게 하는 부모는 드물다.
민족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 말은 완전히 일본어화된 조선어, Jarean인지 Koranese인지 국적불명의 언어가 통용되고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그 경향은 특히 총련계학교에서 심한것 같다. 우리 말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일본에서 우리 말을 배워 본고장의 조선어를 모르기때문이다. 총련계대학교에서는 수학려행으로 북조선에 간다고 들었는데 북조선에 가서 자기들이 하는 말이 영 통하지 않아 충격을 먹고 돌아오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다.
아무튼 나처럼 민족학교도 다니지 않으면서 어느정도 조선어를 할수 있는 재일동포는 지극히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재일동포와 일본식이름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일본식이름을 갖고 있다. 일본식이름은 ≪니혼메이(일본이름)≫라고 하지만 재일동포사회에서는 ≪쯔메이(通名; 통칭명)≫라고 하는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이름은 ≪혼묘(본명)≫라고 한다. ≪쯔메이(통칭명)≫라는 명칭으로부터 알수 있듯이 일본식이름은 ≪생활의 편의상 사용하는 딴이름≫이기때문에 일본식이름이란것은 어디까지나 ≪가짜이름≫인셈이다.
재일동포들이 사용하는 ≪쯔메이≫의 기원은 잘 알다싶이 일제시대의 창씨개명에 거슬러올라간다. 나라가 해방되여도 재일동포의 이름에는 아직 해방이 찾아오지 않은셈이다. 특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본명으로 장사를 하면 일본인들의 차별대우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해서 어쩔수 없이 ≪쯔메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총련이나 민단에서는 본명으로 살자는 구호를 부르기도 하지만 일본사회의 조선인차별을 감안하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린아이들같으면 만약에 본명으로 일본학교에 다니면 이름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당할수도 있기때문에 일본식이름으로 다니게 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웃기는것은 총련이나 민단에서 활동하는 소위 ≪애국심에 넘치는 인사들≫중에는 조직활동의 자리에서는 ≪이름은 민족의 넋이다≫라고 말해놓고선 사생활에서는 당당하게(?) 일본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들중에는 조선이름을 전혀 쓰지 않아 일본이름이 평소에 쓰는 ≪진짜이름≫처럼 되여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본명은 외국인등록증에 적혀있는 ≪또 다른 이름≫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 본명을 우리 말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는 사람조차 있다.
요즘 젊은세대사이에서는 ≪본명선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때까지 써오던 일본이름을 버리고 본명을 쓰자는 움직임이다. 그런 흐름이 생긴후로 점점 본명으로 생활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있는것 같다. 이름이 그 사람을 정체화(identify)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만큼 일본이름을 본명으로 바꾼다는것은 단지 명칭상의 변경이상의 뜻을 가지게 된다. 자기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알려져있던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새로 출발하는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성을 재확인하여 민족적인 정체성을 밝힌다는것은 일본사회에 있는 조선인차별과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것을 의미하기때문에 나름대로 각오가 필요하기도 하다. 재일동포에게 본명을 쓴다는것은 인생중에서 큰 결단이 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본국에 사는 동포들에게는 리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재일동포는 이렇게 일상적으로 ≪민족≫과 마주서야만 하는것이다.
재일동포가 남조선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찾다보면 가끔 일본이름으로 가르쳐달라고 하는 업자가 있다. 그 업자의 립장에서 보면 재일동포의 일본어수준이 일본사람과 똑같기때문에 일본이름을 써서 ≪일본인강사≫라는 간판을 내걸고싶다는 생각이 있는것은 충분히 리해된다. 그러나 재일동포의 립장으로서 이 요구는 매우 곤난할뿐더러 민족적자존심을 심하게 상하게 하는수가 있다. 조국인 조선땅에 류학을 오는 재일동포들은 나름대로 민족적자부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류학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에 일본사람이 그런 요구를 하면 강력하게 반대도 할수 있는데 엉뚱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같은 ≪겨레≫인만큼 마음은 더더욱 복잡하고 괴롭다.
이러한 일 하나만 해도 역시 재일동포의 이름에는 ≪해방≫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고 느낄수가 있다.
일본식성씨는 력사의 웅변가
재일동포가 사용하는 일본식성씨가 창씨개명에 유래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거기에는 그 당시의 재일동포들이 민족의 넋을 지키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김씨는 가네모또(金本), 가네미쯔(金光), 가나야마(金山), 미쯔야마(光山)와 같은 일본식성을 쓰는 사람이 많다. 가네모또(金本)는 ≪김씨(=金)가 본명(=本)≫이란 뜻으로 지은 성이고 가네미쯔(金光), 가나야마(金山), 미쯔야마(光山)는 광산(光山)김씨이다. 리씨에는 구니모또(國本)가 많은데 이것은 ≪국왕(=國)의 본관(=本)≫이란 뜻이다. 박씨는 아라이(新井)가 굉장히 많다. 新井라는 일본식성을 가진 재일동포는 모두 밀양박씨인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우물에서 태여났기때문에 ≪신라(=新)의 우물(=井)≫이란 뜻으로 지은 성씨이다.
일반적으로 재일동포의 일본식성에는 ≪×모또(本)≫란 형식이 많다. 가네모또(金本), 미쯔모또(光本), 구니모또(國本), 야스모또(安本) 등등. 일본프로야구팀 긴떼쯔에서 활약하는 가네모또 요시아끼(金本義明; 본명 김의명)선수도 그렇고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장훈(張勳)씨의 일본식성도 하리모또(張本)이다. ≪×모또≫란 성씨중 가네모또(金本), 구니모또(國本), 하리모또(張本) 등 몇몇은 일본사람의 성씨에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을 가진 사람은 재일동포 또는 귀화한 동포일것이다.
재일동포의 일본이름은 우리 현대사의 축도라고도 할수 있는 만큼 드라마가 있다.
조선부락과 조선시장
재일동포는 일본전국에 흩어져 살고있지만 그중에는 집중적으로 모여사는 지역이 있다. 그런 지역을 ≪죠센부라쿠≫(조선부락)라고 부른다.
조선부락은 일제시대 강제련행된 사람들이 탄광이나 군수공장 근처에 살게 된것이 그 기원이다. 가와사끼, 히로시마, 시모노세끼 등지에 있는 조선부락들은 다 군수공장이나 조선소 등이 있었던 곳이다.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방은 오사까인데 쯔루하시(鶴橋)란 동네에 큰 조선부락이 있다. 이 부락은 히라노가와(平野川)라는 강의 치수공사를 위해 련행된 제주도 사람들의 후손이 많이 살고있다. 쯔루하시 전철역을 내리면 시장이 있는데 김치냄새가 풍기고 조선어가 오가서 조선에 온게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이다.
조선부락이 있는 곳에는 ≪죠센이치바≫(조선시장)도 있다. 처음에 동포들의 생활수단으로 열리게 된 조선시장도 지금은 본국의 상인들도 참여해서 조선의 문물을 구하는 곳으로 재일동포뿐만아니라 남조선류학생, 주재원, 일본사람도 많이 찾아온다. 조선시장은 식품점을 중심으로 해서 조선옷가게, 불고기집 등이 밀집해있다. 수도권에서는 동경 우에노(上野)역 근처의 조선시장이 유명하다. 우리 어머니도 동경에 올라가면 꼭 이 우에노 조선시장에 들른다. 김치를 담그는데 일본고추뿐이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일부러 조선시장까지 가서 고추가루를 사신다.
조선부락은 일제시대에 싼 임금으로 육체로동을 강요당한 재일동포들이 살았기때문에 일반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은 달동네≫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때문에 조선부락의 동네분위기는 보통 동네가 무엇인가 색다른 분위기다. 그러나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과는 달리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조선부락은 우리 동포가 열심히 삶을 사는 생활의 현장으로서 애착에 넘치는 곳이다. 우리 어머니가 자란 곳도 역시 가와사끼의 조선부락이였고 나도 어머니 따라 거기에 몇번이나 가보았다. 조국을 모르는 우리 2세, 3세들은 조선부락이 조국과 민족을 느낄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 이러한 조선부락은 ≪코리아타운≫으로 새로 옷을 갈아입고 ≪차이나타운≫처럼 화려한 일대 상업지로 만들려고 하고있다. 밝고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조선부락을 기쁘게 생각함과 동시에 사라져 가는 옛날의 ≪촌스러운≫ 조선부락의 분위기에 아쉬움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