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들어온 일본말



 일본에 의한 우리 나라 개국과 그 후의 일제 36년 동안에, 우리 민족은 일본을 통해 갖가지 서양문물과 일본문물을 흡수해 왔다. 문물이 유입된다는 것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이 들어오는 뜻이요, 사람이 들어오면 바로 말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개화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에는 알게 모르게 참으로 다양한 일본말이 들어왔다. 그 중에서는 해방 이후 국어 순화운동으로 사라진 말들도 많지만, 한 번 인구에 회자된 말들이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는 그렇게 들어와서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올라가는 일본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온통 일본말인 당구용어
 당구용어가 거의 다 일본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자주 쓰는 당구용어 중에서 일본말이 아닌 것이라면 "맛세이"(불어에서)와 "쿠션"(영어에서)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본어 기원의 용어가 많다. 나도 본국사람과 당구를 쳐서 용어가 모조리 일본말인 것에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온통 일본말을 쓰는 당구용어는, 당구가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 고유의 스포츠도 아닌 당구의 용어가 다 일본말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온통 일본말이라 해도 그 용어의 본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아래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당구용어 몇 가지를 들면서 그 원어를 밝혀 보기로 한다.
다이 だい(다이). 탁자 모양의 물건을 일본말로 "다이"라고 부른다.
다마 たま(다마). "たま"는 "공, 알"이란 뜻이다. "전깃다마"의 "다마"도 같은 말이다.
오시, 싯기 おし(오시), ひき(히끼). "오시"는 "밀기", "히끼"는 "당기기"란 뜻 그대로다.
시네루 ひねる(히네루). "비틀다"란 뜻. "싯기"도 그렇지만 "ㅎ" 소리가 "ㅅ" 소리로 바뀌어 있다.
힛가끼 ひっかけ(힛까께). "걸치기"란 뜻. "ㅎ"이 "ㅅ"으로 바뀌어 "싯가끼"라고도 한다.
가라 から(가라). "빈 것"이란 뜻. 일본에서는 "가라 쿠션"이라고 하는데 그 준말일 것이다.
오마우시 おおまわし(오오마와시). "오오"는 "크다"란 뜻이고 "마와시"는 "돌리기"이란 뜻으로 "오오마와시"는 "크게 돌리기"이란 뜻이다.
우라마우시 うらまわし(우라마와시). "우라"는 "안, 속"이란 뜻으로, "안으로 돌리기"가 본뜻이다.
하꼬마우시 まこまわし(하꼬마와시). "하꼬"는 "상자"란 뜻이다. 짧은 쿠션이 있는 구석을 상자로 비겨 이르는 말이다.
겐세이 けんせい(겐세이). "견제(牽制)"의 일본식 발음.
 이런 용어들의 대부분은 지금 일본에서도 그대로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히로"는 일본말의 "しろ(시로)"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시로"는 "하얀색"이란 뜻인데, "ㅅ"이 "ㅎ"으로 바뀌어서 "히로"란 단어가 된 모양이다.

어떤 업종에서 남아 있는 말들
 토목, 수공업 등에서 쓰이는 용어 중에는 일본말이 남아 있고,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용어들을 포함하면 상당수의 일본말이 남아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어떤 기술을 수반한 이러한 전문직종은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함과 동시에 용어가 그대로 우리말로 들어온 것이다.
빌린말 본디 일본말 빌린말 본디 일본말
시다 した(시따). "아래" 와꾸 わく(와꾸). "틀"
고데 こて(고떼). "인두" 소데 そで(소데). "소매"
노가다 どかた(도까따). "막벌이" 노깡 どかん(도깡). "토관"

개화기에 들어온 한자어
 1876년에 강화조약이 체결되어서 우리 나라가 개국된 이후 서양의 새 문물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문물의 유입은 그것을 나타내는 말들도 함께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말들은 원어 그대로 들어오지 않고 한자어로 번역되어 정착되었는데, 번역된 한자어는 우리 나라보다 먼저 개국된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대대적으로 수입되었다. 거기에는 "전화", "기차" 등 구체적인 물건은 물론, 동양에 없었던 개념들을 나타내는 말도 포함되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러한 번역어들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수출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서양개념을 나타내는 번역어 중에는 "권리", "문화", "의무" 등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는가 하면, 중국 고전에 있었던 말을 빌려서 새로운 뜻을 준 말도 있다. 예를 들면 "혁명"이란 말은 원래 "성을 바꾸고 천명을 바꾼다"란 중국의 사상을 반영한 "역성혁명(易姓革命)"에서 빌려 쓰는 말이고(revolution의 어원은 revolutus이며 re "다시", volu "감다"로 "권력을 다시 뒤집다"란 뜻), "경제"란 말은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린다"란 뜻의 "경국제민(經國濟民)"에서 빌려 쓰는 말이다(economy의 어원은 oikonomia며 oiko "집", nom "규율"로 "생계 꾸림"이란 뜻). 이와 같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들은 수적으로 상당히 많아, 이 단어들을 배척하면 우리 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현대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한자어들이 평소에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인식이 전혀 없지만 이것들은 엄연히 일본제 한자어이다.

한자어로 환골탈태한 일본어
 한국어에서는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지 않지만, 일본어에서는 일본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전통이 있다. 한국어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百貨店에 行서 服을 買았다"라고 표기해서 "백화점에 가서 옷을 샀다"라고 읽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도 순수 일본 고유어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한자 표기된 일본 고유어가 일제시기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그대로 한자어로 탈바꿈한 말들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小包"라고 쓰면 이것을 한자소리로 읽지 않고 일본 고유어 "고즈쯔미"(작은 보따리)로 읽는데, 이 단어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 한자어 "소포"로서 그대로 정착되었다. 이와 같이 한자어로 환골탈태한 일본어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무튼 수효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여기에 올린 것은 그 중에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빌린말 본디 일본말 빌린말 본디 일본말
건물 たてもの(다떼모노; 建物) 견적 みつもり(미쯔모리; 見積)
견습 みならい(미나라이; 見習) 각서 おぼえがき(오보에가끼; 覺書)
대매출 おおうりだし(오오우리다시; 大賣出) 대절 かしきり(가시끼리; 貸切)
대합실 まちあいしつ(마찌아이시쯔; 待合室) 매립 うめたて(우메따떼; 埋立)
매상 うりあげ(우리아게; 賣上) 매점 かいしめ(가이시메; 買占)
민초 たみぐさ(다미구사; 民草) 상회(하다) うわまわる(우와마와루; 上回る)
선불 さきばらい(사끼바라이; 先拂) 선착장 ふなつきば(후나쯔끼바; 船着場)
수당 てあて(데아떼; 手當) 수속 てつづき(데쯔즈끼; 手續)
수하물 てにもつ(데니모쯔; 手荷物) 시합 しあい(시아이; 試合)
엽서 はがき(하가끼; 葉書) 인상 ひきあげ(히끼아게; 引上)
입장 たちば(다찌바; 立場) 조립 くみたて(구미따떼; 組立)
조합 くみあい(구미아이; 組合) 주식 かぶしき(가부시끼; 株式)
추월 おいこし(오이꼬시; 追越) 충치 むしば(무시바; 蟲齒)
취급 とりあつかい(도리아쯔까이; 取扱) 하회(하다) したまわる(시따마와루; 下回る)
할인 わりびき(와리비끼; 割引) 할증 わりまし(와리마시; 割增)
합승 あいのり(아이노리; 合乘) 후불 あとばらい(아또바라이; 後拂)

일본식 발음의 외래어
 서양 외래어 중에는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들어온 말들이 일본식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들어온 것들이 있다. 개중에는 "다꾸시(택시)"처럼 이미 사라진 지가 오래된 단어도 있지만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단어들도 많다.
빌린말 본디 일본말 빌린말 본디 일본말
밧데리 バッテリ-(밧떼리이) 카텐 カ-テン(카아텐)
타이루 タイル(타이루) 바께쓰 バケツ(바께쯔)
샤쓰 シャツ(샤쯔) 세타 セ-タ-(세에타아)
도란스 トランス(도랑스)
 샷시는 일본발음으로 "삿시(サッシ)"인데 우리말에 들어오면서 "샷"으로 소리가 바뀌었다. 또 "난닝구"는 일본말로 "란닝구(ランニング)"인데 이 말은 "러닝 셔츠(runinng shirt)"의 준말이다. "러닝"을 일본식 발음으로 "란닝구"라고 한다. 최근 들어온 일본 상표 중 원래는 외국어풍 단어인 와코루(Wacoal), 도토루(Doutor)는 철자를 보는 한 "와콜", "두토르"가 되어야 될 텐데 일본식 발음 "와코오루(ワコ-ル)", "도토오루(ドト-ル)"가 그대로 유포되었다.
 외래어 중에는 일본식 준말이 정착된 것이 있다. 에어컨은 air conditioner의 일본식 준말 "에아콘(エアコン)"이 그대로 들어온 말이다. 데모(demonstration의 일본식 준말 "デモ(데모)"에서), 인플레(inflation의 일본식 준말 "インフレ(잉후레)"에서), 레지(register의 일본식 준말 "レジ(레지)"에서) 등이 있다.

이것도 일본말이라니…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일본말이 섞여 있을 때가 있는데, 그 중에는 "엇? 이런 것까지?"라고 깜짝 놀래는 단어도 있다.
다대기 たたき(다따끼). "다짐"이란 뜻으로, 일본말로서는 주로 다진 고기를 지칭할 때가 많다. 원래 일본말과 소리가 꽤 떨어진 데다가 발음 자체가 우리말처럼 들려서 이 말이 일본말이라고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문 것 같다. 일본말로 "다따끼"라고 하면 보통 생선이나 고기를 다진 것을 이른다.
소보루 そぼろ(소보로). 고기를 다져서 간을 한 음식. 일본에서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다진 것을 "소보로"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잉꼬 いんこ(잉꼬). 일본말에서는 한자어로 "鸚哥"로 쓰는데 우리말에는 한자어로 들어오지 않고 일본말 소리가 그대로 들어왔다. 鸚자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새가 앵무새(鸚鵡)의 한 가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잉꼬부부"는 일본말로는 "원앙새 부부(오시도리 후우후)"라고 부른다.
뎃기리
앗사리
てっきり(뎃끼리), あっさり(앗사리). 부산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로 알려진 이 말들, 많은 사람들이 부산 사투리인 줄 알고 부산 사람도 그렇게 아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이것은 100% 순수 일본말이다. 그렇지만 일본말에서 쓰이는 뜻이 우리말에서 쓰이는 뜻과 꽤 다르다. 일본말 "뎃끼리"는 "꼭(…인 줄로 알았다)", "앗사리"는 "담백하게"란 뜻이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일본에서 가깝기 때문인지, 다른 지방보다 일본말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겐또를 친다"의 겐또도 "가늠"이란 뜻의 일본말이다.
 우리 나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식품은 거의 다 일본 이름 그대로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이 일본말이라고 알고 지낸다. 우동 "うどん(우동)", 오뎅 "おでん(오뎅)", 뎀뿌라 "でんぷら(뎀뿌라)", 셈베 "せんべい(셈베에)", 만쥬 "まんじゅう(만쥬우)", 모나까 "もなか(모나까)" 등. 우리 나라 "셈베"는 단 맛이 나지만 일본 "셈베에"는 간장 맛이 난다. "만쥬"의 어원은 중국어 "만토우(饅頭)"이다. 속에 뭐가 들어 있는 찐빵을 "만토우"라고 하는데, 이 음식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만두"라고 불리게 되고, 일본을 경유해서 온 것은 "만쥬"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들어온 과자 중에서 "양갱"만은 일본말을 쓰지 않고 "羊羹"이란 한자를 우리말로 읽는다. "오뎅"은 일본에서는 어묵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묵을 써서 만든 요리의 이름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어묵도 그 재료와 모양에 따라 각각 이름이 다 있다.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오뎅"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다. 이 "오뎅"은 완전히 한국화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일본말, 그냥 놔둘 거냐, 몰아낼 거냐
 일제 36년은 우리 나라 문화에 영향을 주는 데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리 나라 문화의 독자성을 호소하려면 이러한 일본말들은 당연히 배척될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며, 사실 지금까지 국어 순화운동에 의해 수없는 일본말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러한 치열한 순화운동을 거쳐도 우리 생활 속에는 아직도 일본말에 뿌리를 두는 말들이 상당수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중에는 "정치", "문화" 등 이미 뺄 수 없는 한자어들도 많아 일본말 기원의 단어들은 우리 문화에 깊이 뿌리를 박은 감이 없지 않다.
 여기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문화"에 대해 우리는 좀더 너그럽게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하고. 처음에는 모욕과 강권 속에서 들어온 말일지라도 이제는 일본과의 상관성도 희박하고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어 있다. 사실, 교포인 내가 보아도 "오뎅"이나 "다대기"는 이미 일본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아도 우리 것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문화 침략을 기도했을지 모르는 이 말들은 (아니, 말 뿐만 아니라 실물도) 이제 우리에게 "기순"해서 완전히 우리 아군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 것"이 된 것은 결국 우리 문화 자체의 폭을 넓히고 우리 문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우리 문화를 아끼며 사랑하고 싶고, 이런 방법으로 우리 민족과 문화를 사랑할 수도 있다고 굳게 믿는다.

도움이 되는 책
"형대 국어 어휘사용의 양상" (강신항 저, 태학사, 1991년)
각계 각층에서 사용되는 어휘에 관한 연구서. 외국어 차용어에 관한 기술 중에 일본어 차용어도 널리 수집되어 있다.
"반드시 바꿔 써야 할 우리말 속 일본말" (박숙희 저, 한울림, 1996년)
우리말 속에 뿌리를 박은 일본말에 대해 짧은 글로 읽기 쉽게 풀이한 책. 한 페이지에 한 항목씩 해설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가 편하다. 다만, 사실을 오인한 부분도 종종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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