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한국어 교재란?
- 일본어화자의 경우 -


1. 들어가기
1-1. 본고의 목적
2. 대상과 종류의 문제
2-1. 교재의 대상
2-2. 교재의 종류
3. 내용의 문제
3-1. 학습단계·도달도의 획정(劃定)
3-2. 문자와 발음 문제
3-3. 문법의 문제
3-4. 문법 항목의 초급 학습 5단계
3-5. 어휘의 문제
3-6. 예문의 문제
3-7. 학습자의 모어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3-8. 단원 구성의 문제
3-9. 술어와 발음 표기의 문제
4. 형식의 문제
4-1. 교재의 형식 또한 내용이다
4-2. 형식에 있어서 고려할 문제들
5. 마무리


   1. 들어가기
1-1. 본고의 목적
 본고에서는 한국어 교재로서 어떠한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 문제를 검토하는 데에 있어서는, 한국어 교재 일반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보다 대상을 일본어 화자의 경우에 한하여 논하는 것이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릇 언어학습 교재는 학습자의 모어(native language)에 따라서 달라져야 하며, 유형론적(typological)으로 완전히 다른 언어를 모어로 하는 학습자들에게 획일적인 교재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비능률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논자의 경험이 일본어화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여, 여기서는 일본어화자에 대한 교재로서 어떠한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한국어 교재 일반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2. 대상과 종류의 문제
2-1. 교재의 대상
2-1-1. 학습자의 모어를 고려한 교재의 제공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언어교재란 학습자의 모어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제일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특히, 모어와 학습언어와의 동일성이나 차이에 관한 충분한 파악이 필요하다.
 음론(phonetics, phonology)에 있어서는 발음상의 이동, 음절구조나 악센트체계의 차이에 유의한 교재 작성이 요구된다. 어휘에 관해서는 한자문화권의 출신자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중국과 일본처럼 한자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한자문화권과 그렇지 않은 경우와는 어휘 획득상 큰 차이가 나타난다. 즉 일본어화자와 중국어화자에게 있어서는 한자어의 존재란 학습상의 중대한 이점인 것이다. 문법에 관해서는 어순, 조사의 존재 여부, 복합문의 구조 등을 비롯한 유사성이 제일 먼저 확인되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도 중국어화자와 일본어화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현재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외국어로서의 일본어 교육의 현장을 보면 너무나도 명백하다. 외국에서 온 학습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칠 경우, 대개는 한자권과 비한자권으로 학생을 나눈다. 여유가 있으면 중국어권과 한국어권도 나누는 것이 좋다는 것은 일본어 교육에서 이미 상식화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한자와 한자어의 존재, 일본어와 한국어의 통사상의 유사성의 존재는 간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2-1-2. 학습자의 학습목적에 맞는 교재의 제공
 같은 한국어 학습자 중에도 그 학습목적은 가지각색이다. 학습목적 별로 크게 나누어 보면 일본에는 다음과 같은 학습자 유형이 있다고 생각된다.
1) 한국어를 전공으로서 본격적으로 배우는 대학생
2) 제2, 제3 외국어로서 배우는 대학생
3) 외국어 과목으로서 배우는 고등학생
4) 직업상 필요로 하는 사회인
5) 취미로 배우는 학습자
6) 재일교포로서 민족교육 기관에서 배우는 학생
7) 재일교포로서 개인적으로 배우는 학습자
 위와 같은 학습자의 유형별로 교재가 개발되는 것이 바람직하나, 현단계에서는 각 목적에 맞는 교재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는 할 수 없다.
2-2. 교재의 종류
2-2-1. 학습자의 학습환경에 맞는 교재의 제공
 학습자의 학습환경, 즉 교재가 사용되는 장소 또한 다양하지만 우선 교실용과 자습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교실용=교과서
대학교, 전문학교, 고등학교, 민족학교, 시민강좌, 써클 등
2) 자습용=학습서
 교실용 교과서와 자습용 학습서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교사의 존재 여부에 있다. 이에 따라 교재의 성격이 규정되는 것이다. 교사가 없는 환경에서는 학습상의 충분한 정보를 교재가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여러 교재는 교과서와 학습서의 구별이 아직 미분화된 상태였다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이 점을 분명히 구별해 나가야 한다.
2-2-2. 학습내용별 교재의 제공
 학습목적과 학습환경 이외에도 또한 학습내용별의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 전문적인 학습은 제외하고 우선 초급과 중급의 경우만 보더라도, 현재 일본에서 요구되고 있는 한국어 교재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입문서 (제2, 제3 외국어용 및 시민강좌용)
 2) 초급 쓰기     (작문) 교재
 3) 초급 말하기   (회화) 교재
 4) 초급 읽기     (독해) 교재
 5) 초급 듣기     (청취) 교재
 6) 초급,중급 한자음·한자어 교재
 7) 중급 쓰기     (작문) 교재
 8) 중급 말하기   (회화) 교재
 9) 중급 읽기     (독해) 교재
10) 중급 듣기     (청취) 교재
11) 초급,중급 어휘 교재
12) 한글 쓰기   (펜글씨) 교재
13) 문법 교재
 이상, 각각 교실용과 자습용을 생각할 수가 있지만 듣기 교재와 어휘 교재에 한해서는 교실용과 자습용을 겸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더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한국어사에 관한 교재나 "한국어학 개설"과 같은 교재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 적당한 양의 연습문제(drill)가 딸려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습장(work book)의 형식으로 독립된 교재를 개발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2-2-3. 입문기(入門期)·입문서의 중요성
 위에서 든 각종 교재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 하면, 그것 역시 입문서일 것이다. 특히 교실에서 배우는 언어 학습에 있어서는 입문기의 경험이 그 후의 모든 학습을 규정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 있어서 전공학생들을 상대로 입문기의 학습 성과를 살펴보면, 학습 개시 후 한 달 내지는 두 달 사이의 성적 순위가 대학 4년 동안 유지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학습 개시 직후에 성적이 좋았던 학생은 끝까지 좋은데 비해, 성적이 나빴던 학생은 끝까지 나쁜 것이다. 도중에서 성적이 갑자기 좋아진다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가 없다. 이것을 필자는 "개표 속보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입문 단계의 학습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학습 입문기의 중요성은 비모어(非母語) 학습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보편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어 학습의 경우 특히 문자가 학습자에게 완전히 낯선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입문기의 역할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된다. 언어 학습에 있어서 입문기와 입문서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정도이다. 입문서는 정성껏 만들어져야 한다.
2-2-4. 교사용 지도서의 제공
 교실용 교과서에는 반드시 교사용 지도서가 필요하다. 언어학이나 언어교육의 전문가가 아닌 교사가 한국어 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경우가 일본에서는 상당히 많으므로 교사용 지도서는 불가결하다. 일어를 잘 모르는 한국인 교사가 많다는 점에서도 교사용 지도서는 한국인 교사용과 일본인 교사용의 두 가지가 있으면 더 이상적이다.
   3. 내용의 문제
3-1. 학습단계·도달도의 획정(劃定)
 교재 개발에 있어서는 학습목표를 명백히 함과 동시에 어디까지를 초급으로 하고 어디까지를 중급으로 할 것인가 하는 학습단계·도달도의 획정이 요구된다.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한글> 능력 검정 시험"의 경우에는 5급에서 4급, 3급, 준2급, 2급 그리고 1급까지의 6단계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세분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아무튼 도달도 획정 작업은 문자와 발음은 물론 어휘와 문법 전체에 걸쳐 검토되어야 하며, 특히 초급의 획정에 관해서는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본의 대학교의 제2, 제3 외국어의 경우 1년에 90분 수업이 20번 내지는 25번 정도인데 입문서는 그 수업 운영에 맞추어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이것을 일단 초급으로 생각해 두기로 하겠다.
3-2. 문자와 발음의 문제
 한국어 학습 입문기의 최대의 난관은 문자와 발음이다. 로마자를 사용하는 언어일 경우는 비교적 쉽게 그 언어로 도입을 할 수 있는데 비해, 한글의 경우는 일본어화자들에게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한국어는 형태음소론적인 교체가 심한 언어이기 때문에 문자와 발음에 관한 지도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문자와 발음의 지도에 있어서는 발음 규칙을 법칙화하여 제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데, 본고에서는 (a) 발음의 변화 등의 현상은 개별적으로 제시할 것이 아니라 규칙화·법칙화하여 제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문자와 발음은 대강 다음과 같은 (b) 일정한 순서로 단계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1) 단음과 한글 … 모음, 자음(초성, 종성)의 음가와 자모의 이해
 2) 유성음화 … "기자", "자기" 등
 3) 종성법칙과 자모의 대응관계 … "것", "걷", "겉" 등
 4) 겹받침 … "값", "닭" 등
 5) 종성의 초성화1 … "산이"[사니], "옷은"[오슨], "못이"[모시] 등
 6) 겹받침의 초성화 … "값이", "닭이"
 7) 구개음화 … "굳이", "같이" 등
 8) 농음화(된소리화) … "합격", "꽃도", "책방" 등
 9) 한자어에 있어서의 유음 뒤의 농음화 … "발달", "결정", "결심" 등
10) 유음화 … "신라", "팔년" 등
11) 격음화(거센소리화) … "급행", "역할", "좋다" 등
12) ㅎ의 약화와 발음되지 않는 ㅎ … "전화", "좋아요" 등
13) 구음의 비음화(콧소리화) … "합니다", "꽃만", "식물" 등
14) 유음의 비음화 … "금리", "생략", "법률", "몇리", "동립" 등
15) 종성의 초성화2 … "못 옵니다"[모돔니다]와 "못이"[모시]의 구별
16) 자음어간 용언에 있어서의 농음화 … "덥다", "남고", "신고" 등
17) 한자어에 있어서의 예외적인 농음화 … "사건", "내과", "한자", "물가" 등
18) 합성어에 있어서의 농음화와 사이시옷 … "바닷가", "길가", "비빔밥" 등
19) ㄴ 첨가 … "문 옆", "부산역", "옛이야기", "볼일"
20) 한자어에 있어서의 ㄴ+ㄹ … "생산력", "구인란" 등
21) 종성의 탈락과 동화 … "학교"[하꾜], "못 가요"[모까요],   "신문"[심문]
22) 장모음의 단모음화 … "말">"정말", "짓다">"지어요"
 이러한 순서는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부분과 경험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18)농음화와 19)"遁"첨가는 모든 단어의 경우를 법칙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어 단어 하나 하나마다 사전에서 확인하여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초급의 단계에서는 습득하기가 어렵다. 그 뿐만 아니라 중급 및 상급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 방면의 상세한 연구가 기다려진다.
 (c) 1)에서 16)정도까지는 초급에서 습득해야 할 법칙이라고 생각된다. 17)에서 20)에 관해서도 각각 해당되는 단어가 나타났을 경우에는 설명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22)장모음의 단모음화는 장모음 그 자체가 붕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로 삼을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여러 발음의 법칙들은 법칙을 가르치려고 하는 나머지, (d) 법칙의 나열만으로 끝나 버려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겹받침에 관한 발음이나 15), 20)과 같은 것은 처음부터 규칙으로서 제시할 게 아니라 그것에 해당되는 단어가 교재에 나타났을 때에 제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문자와 발음에 관한 법칙은 문장을 배우기 전에 거의 다 배워 두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문장을 배우면서 조금씩 배워 가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가 있다.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의 경우라면 먼저 모든 발음 규칙을 다 배운 다음에 문장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e) 일반적인 학습자의 경우에는 문장을 배우면서 조금씩 발음의 법칙을 배워 가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단어의 높낮이=피치와 문장의 높낮이=억양(intonation), 그리고 청각인상 등에 관하여는 CD 등 음성교재에 의하여 개별적, 경험적으로 배우고 있는 실정이며 법칙화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점에 있어서도 한국어화자 연구자에 의한 기초적인 연구가 기다려진다.
 중급 이상에서는 띄어쓰기도 문제가 된다.
 글씨 쓰기의 문제로서는 필기체의 독해는 의외로 어렵다는 점을 확인해 두고자 한다. 중급 이상의 교재에서는 이 문제에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상, 문자와 발음에 관한 논점은 (a)∼(e) 정도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3-3. 문법의 문제
 어떤 순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는 문제는 문법 지도에 있어서는 특히 중요하다. 제1과에서부터 비과거형과 과거형을 한꺼번에 제시하는 교과서도 한때 실제로 있었으나, 이러한 교재로는 도저히 학습자들이 효과적으로 배울 수가 없다.
 문법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큰 문제들이 있다.
3-3-1. 상칭형과 하칭형, 어느 쪽을 먼저 제시할 것인가?
 이것은 상칭형인 "합니다"와 하칭형인 "한다"의 어느 쪽을 제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학습 목표에 따라서 결정하면 된다. 독해를 목표로 할 경우에는 하칭형을 먼저 배우게 될 것이다.
3-3-2. "합니다"체와 "해요"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기존의 교재는 거의 모두가 "합니다"체를 먼저 제시하고, "해요"체는 훨씬 뒤에 배우게 되어 있다. 이 두 가지 문체를 익히기에는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요"체는 등한시될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합니다"체와 "해요"체의 공존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일상생활에 있어서 "해요"체의 사용빈도가 아주 높기 때문이다. 대학교의 교육 현장과 교과서에는 "합니다"체밖에 나오지 않지만 객원교수,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해요"체로만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인사말부터가 "안녕하십니까?"와 "안녕하세요?"의 두 가지가 있을 정도이니, 이 두 문체의 존재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으로서 감수하여야 한다. 병행시켜 배워도 큰 혼란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회화체의 리얼한 파악에 있어서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전혀 여유가 없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고에서는 "합니다"체와 "해요"체를 병행적으로 제시하는 방침을 택하고자 한다.
3-3-3. 문장체와 회화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문장체와 회화체에 관해서는 간노[菅野裕臣](1981)에서 처음으로 명백히 체계화되었으며, 그 이전의 교재에서는 거의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3-3-2와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합니다:해요"를 비롯하여, "이것이:이게", "무엇:뭐" 등, 그리고 "와/과:하고", "에게:한테"와 같은 어미(조사)의 문제, 용언의 "-아/-어"형과 "내어:내" 등의 문제, 부정형 "하지 않는다:안 한다" 등등 취급해야 할 형식은 많다. 이것 역시 병행하여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화체 없이는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기계적인 예문만 나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회화체를 초급에서부터 대담하게 도입하는 것도 문장체와 회화체의 구별만 명백하다면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요는 교수법과 연습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학습자의 약간의 부담은 회화체를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그 학습효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서양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만 유럽의 여러 언어를 배워 왔던 명치시대의 유럽어 학습과는 완전히 조건이 다르다. 한국어는 실제의 회화에 접할 기회가 극히 많은 언어인 것이다. 모어화자와의 만남의 가능성이 대단히 큰 언어라는 점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 실제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소박한 실감은 언어학습의 동기(motivation)를 고무하여 주고도 남음이 있다. 말이 안 통하는 언어학습은 일본에 있어서의 한국어 학습의 경우에는 심히 안타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 있어서는 한국어화자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바로 눈 앞에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어 교육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며, 교재 역시 만남을 위한 교재이어야 한다.
 물론 문장체부터 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 예를 들어 대학교의 전공과목으로서 배우는 학생을 대상으로 할 경우가 될 것이다. 회화에 역점을 두지 않는다면 하칭형부터 도입해, 문장 독해로 나아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3-3-4. 용언의 활용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어기(語基, base)의 방법에 대하여
 한국어학습에 있어서 최초의 난관이 문자와 발음의 학습에 있다면, 용언의 활용은 제2의 난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자칫 잘못 들어서면 꽤 오래 계속될 수 있는 아주 험한 난관이다. 시민강좌 등에서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 용언의 활용의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여 몇 년씩이나 초급을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만 보아도 이 문제의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재에서 이 용언의 활용 문제는 경시되어 있다.
 간노[菅野裕臣](1981)를 비롯하여, 일본에서는 용언의 활용어기를 설정하는 방법으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모든 용언에는 세 가지 어기가 있으며, 어미는 언제나 같은 형태이고, 어미마다 세 어기 중 몇 번째의 어기에 붙는가가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본형에서 "-다"를 빼면 제Ⅰ어기, 제Ⅱ어기는 제Ⅰ어기가 자음으로 끝날 경우에만 "-으"를 붙이고 모음으로 끝날 때에는 아무 것도 붙이지 않는다. 제Ⅲ어기는 제Ⅰ어기의 마지막 모음이 양모음인 "葡/?"의 경우에는 "아"를 붙이되 그 이외의 경우에는 "어"를 붙인다. 다음은 이러한 방식에 따른 활용어기의 예이다.
<표1>
  기본형 제Ⅰ어기 제Ⅱ어기 제Ⅲ어기
자음어간  받다  받-  받으-  받아-
 묵다  묵-  묵으-  묵어-
모음어간   보다  보-  보-  보아-(봐-)
 주다  주-  주-  주어-(줘-)
 가다  가-  가-  가-
* ( )안은 회화체
 "-면"은 제Ⅱ어기에 붙으므로 "Ⅱ-면"이라고 표기하여 이 어미를 외운다. "가고 있다"는 "Ⅰ-고 있다"형이고, "가 있다"는 "Ⅲ 있다"라는 식이다. 이 어기의 개념만 파악하면 학습자는 그 이후의 문법형태의 형태론은 쉽게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요"는 "가다"의 "-다" 대신에 "-요"를 붙인 것이라고 보는 식의 오류는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접속형(부동사) 어미인 "-다가"에는 "Ⅰ-다가"와 "Ⅲ-다가"의 두 가지가 있는데, 이런 구별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에도 어기의 사고방식은 많은 도움이 된다.
 나아가 문법접미사(선어말어미)(prefinal ending) 그 자체도 용언과 똑같은 어기 활용을 보인다:
<표2>
  기본형 제Ⅰ어기 제Ⅱ어기 제Ⅲ어기
자음어간  -겠-  -겠-  -겠으-  -겠어-
 -ㅆ-  -ㅆ-  -ㅆ으-  -ㅆ어-
모음어간   -시-  -시-  -시어-
 -셔-
 -세-(+요)
 선어말어미도 몇 어기에 붙는가가 미리 정해져 있는데 그 각각을 "Ⅰ-겠-", "Ⅲ-ㅆ-", "Ⅱ-시-"와 같이 나타낸다. 이리하여 학습자는 용언의 활용과 선어말어미의 활용을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부[志部昭平](1990)참조.
 다만, 이 어기에 의한 파악은 언뜻 보기에는 약간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 약점인데, 그래도 한번 파악만 하면 학습자에게도 교사에게도 양쪽 다 아주 효율적이다. 또한 체계적인 파악에 의한 학습자의 안도감 혹은 만족감도 특기할 만하다.
 어기에 관해서는 ㄹ어간의 경우에만 다음 두 가지 설명이 있다.
<표3> 간노[菅野裕臣](1981) 방식
  기본형  제Ⅰ·Ⅱ어기  제Ⅲ어기

ㄹ어간  알다  알-/아-  알아-
 걸다  걸-/거-  걸어-

<표4> 노마[野間秀樹](1988, 2000) 및 權在淑(1992, 1995)에
의한 수정 방식
  기본형  제Ⅰ어기  제Ⅱ어기  제Ⅲ어기

ㄹ어간  알다  알-  알-/아-  알아-
 걸다  알-  알-/아-  걸어-
 노마[野間秀樹](1988, 2000) 및 權在淑(1992, 1995)에 의한 수정판에서는 "기본형에서 <-다>를 빼면 제Ⅰ어기"라는, 제Ⅰ어기를 만드는 방법을 ?어간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통일하여, 제Ⅱ어기의 경우에만 ?이 탈락된 형태와 탈락되지 않은 형태의 두 가지가 있다고 설정하였다.
3-4. 문법 항목의 초급 학습 5단계
 초급에 있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문법 항목을 넣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초급 단계를 5단계로 나누어 제시해 보기로 한다. 용언 전체를 "하다"로 대표시켜 예를 들어서 "Ⅲ-요"는 "해요", "Ⅰ-고 있다"는 "하고 있다"와 같이 표기한다:

제1단계 ―  입문기 : 문자에 익숙해지면서 가장 쉬운 문장을 배운다
최소한의 어미(조사), 지정사문과 존재사문을 배운다
제2단계 ―  초보기 : 단순문의 기본적인 문법형식을 배운다
일반동사, 형용사, 존경, 부정, 활용어기 등의 개념 도입
제3단계 ― 확충기 : 변격용언과 쉬운 복합문을 배운다 제4단계 ― 초급 완성기 : 과거형 등 용언의 제형식 및 하칭형을 배운다
제5단계 ―  초급에서 중급으로의 과도기 : 용언의 제 형식을 배운다
사전을 이용하여 쉬운 문장은 자력으로 읽을 수 있다
 위의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모델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각 항목의 배열은 변경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위에서는 변격용언을 배운 다음에 과거형을 배우게 되어 있는데, 반대로 과거형을 먼저 배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3-5. 어휘의 문제
3-5-1. 사용어휘와 이해어휘의 구별
 어휘의 도달도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용어휘와 이해어휘의 구별이 중요하다. 초급, 특히 초보 단계에 있어서는 사용어휘와 이해어휘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이 보통이지만, 초급에서 중급으로 들어설 시기가 되면 사용어휘와 이해어휘의 어휘수 차이가 두드러지게 된다. 어휘를 제시할 때는 어느 단어를 사용어휘로서 내놓을 것인가 하는 점을 고려하여 교재에 담아야 한다.
3-5-2. 반복하여 제시할 것
 사용어휘로서의 학습을 기대하는 중요한 단어는 교재 안에서 몇 번씩이나 제시하여야 한다. 기억에 남도록 한 번 나온 단어가 그 다음 과에서도 나오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단어의 의미도 여유만 있으면 되풀이하여 설명하는 것이 좋다. 한 번 나온 단어라 해서 학습자가 반드시 그 단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한 번밖에 안 나온 단어는 두 번째에 나왔을 때에는 이미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3-5-3. 단어는 찾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사전 없이 배울 수 있는 입문서를
 모든 단어의 의미는 교재 안에서 주어져야 한다. 초급 단계에서 학습자에게 사전으로 단어를 찾게 하는 것은 학습 능률이 매우 떨어진다. 초보 단계에서는 교재에 나와 있는 단어의 의미는 모두 설명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가능한 한, 단어의 의미를 본문과 같은 페이지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단어를 사전에서 찾게 하는 것이 언어 학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단어는 사전을 찾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워서 이용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사전에 익숙해진다는 것과 기계적인 사전 찾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3-5-4. 초급의 어휘수
 초급 단계에서는 적어도 850어 내지는 1000어 정도의 단어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은 가능한 한, 사용어휘로서의 습득을 지향하여야 한다.
 실제의 어휘 선정에는 몇 가지 시도가 있는데, 간노[菅野裕臣] 외(1988)에서는 845 단어를 중요어로서 지정하였다. 그리고 동경외국어대학에서는 이것을 제1차 중요어로 하고, 별도로 제2차 중요어 1369, 제3차 중요어 1308개를 선정한 바가 있다.
3-5-5. 어떤 어휘를 택할 것인가
 초급의 어휘로서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
(a) 교실 운영에 필요한 어휘
"발음", "단어", "선생님", "따라 읽으세요", "교과서" 등
(b) 사용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어휘
"-이다(지정사)", "하다", "있다", "그", "되다", "같다" 등
(c) 비한국어화자가 한국어화자와 접했을 때에 실제로 쓰일 가능성이 큰 어휘
"일본사람", "교포", "공부", "한국어", "네?", "안녕하세요" 등
(d) 기능어, 준 기능어
"것", "앞", "수", "저", "개(個)", "때" 등
(e) 조어력이 높은 어휘
"말", "일", "약", "차(車)", "눈(眼)", "오다" 등
(f) 조어력이 높은 한자어 형태소
"사(社)", "회(會)", "적(的)", "점(點)", "어(語)", "인(人)" 등
(g) 상대적으로 큰 개념을 나타내는 어휘
"대합실"보다는 "장소", "오전"보다는 "시간", "중학교"보다는 "학교", "셔츠"보다는 "옷", "해바라기"보다는 "꽃", "토끼"보다는 "동물" 등
(h) 인구가 많은 한국인의 성
"김", "이(리)", "박", "최", "정" 등
(i) 주요 지명
"한국", "서울", "일본", "동경" 등
3-5-6. 발음연습과 단어
 교재에는 흔히 발음연습 부분에만 나오는 단어들이 있다. "시루", "소쿠리", "토시", "또아리" 등 이러한 예들은 한국어를 전공으로 하는 학생이라면 몰라도 초보 단계에서 구태여 예로 들 필요가 없다고 본다. 발음연습 단계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빈도가 높은 단어를 제시하도록 하여야 한다.
3-5-7. 한자음과 한자어
 한자문화권의 학습자에게는 한자음과 한자어에 대한 대조언어학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초급의 비교적 빠른 단계에서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자음과 한자어에 대하여 독립된 교재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성의 "遁/?"="ン", 종성 "둁"≠"ン"의 대응관계를 깨닫게 하는 것은, 종성의 "遁"과 "둁"의 구별이 어려운 일본어화자에게는 아주 효과적이다. 마찬가지로 종성 "?"과 "ツ/チ", "?"과 "ク/キ" 등을 비롯한 종성의 대응관계에 대해서도 빠른 시기에 기르쳐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타 모음과 자음 전반에 걸쳐 기본적인 한자음의 대응관계를 포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자어에 관하여서는 "工夫", "來日", "模樣"과 같이 한국어와 일본어에 있어서 각각 그 의미와 용법이 다른 것, "近處"와 "近所", "綜合"과 "總合"처럼 의미가 같으면서도 한자가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하여는 특히 주의를 환기시켜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중국어화자에 대하여서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3-5-8. 같은 분야의 단어는 함께 제시
 "비빔밥"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국밥"이나 "불고기", "냉면"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습자의 기억에 도움이 되고 또한 작문 연습 등에도 응용할 수 있다. 본문 중에 그러한 지면의 여유가 없을 경우에는 어휘집의 형식으로 따로 제시하는 것도 유용하다.
3-6. 예문의 문제
3-6-1. 예문이 자연스러운가?
 교재에 있어서 예문은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제작된 교재의 경우에는 예문이 자연스러운가 어떤가가 항상 문제시된다. 비한국어화자가 만든 예문 중에는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한 예문이 나타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한국어화자가 만든 예문 뿐만 아니라 사실은 한국어화자가 만든 예문 중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어화자의 작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 예문이 자연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3-6-2. "부자연스러운 예문"이란?
 한마디로 예문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해도 사실은 그 "부자연스러움"에는 여러가지 위계가 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을 구별하여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1) 단어결합상이나 문법상의 부자연스러움
 한국어로서는 있을 수 없는, 완전한 오류가 이것이다. 요즘은 이런 오류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것 같다.
   (2) 발화의 현장에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움
 경어법의 오류, 문체의 어색함 등이 이에 해당된다. 2인칭 대명사로 "you"를 무조건 "당신"으로 기술한 것도 가끔 있다.
   (3) 현실적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 발화로서의 부자연스러움
 "나는 소년이다", "이것은 책입니다", "달이 있습니다" 등.
 이러한 예문은 기존의 교재에서는 흔히 보이는 것들인데, 문법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또 어휘 사용에 있어서도 아무런 오류는 없지만 현실적인 발화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발화이기 때문에 거의 무의미한 예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기계적인 유형 연습에 있어서만 용납될 것이다.
 내용이 없고 학습자를 멸시하는 듯한 이러한 예문 역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위한 교재라는 입장에서 단호히 배격하여야 한다.
   (4) 불충분한 대화에서 보이는 부자연스러움
 특히 대화문에 있어서 접속사의 부족 등에 의하여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움이 이것이다. 사용 단어의 제한 등에 의하여 가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5) 일본어를 직역한 결과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움
 이것은 특히 일본어화자가 저자일 경우에 잦다. 문법적으로는 이상한 데가 없는 만큼 학습자가 어색함을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일반적으로 일본어화자가 저자가 되었을 경우에는 일본어로 직역하기 쉬운 문장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반어나 한국어 특유의 표현 등, 일본어의 통사구조에 안 맞는 문장은 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위에 든 바와 같이 "부자연스러운 예문"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예문을 제시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습자가 예문을 외우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애써 외운 예문들이 어색한 예문이었다면? 외운 예문은 그 모두가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교재는 학습자의 그러한 노력에 보답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3-6-3. 예문 작성의 이율배반
 자연스러운 예문을 만들려면 다양한 어휘와 다양한 문법형식이 요구된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예문은 일반적으로 학습자들에게는 어려운 것이 되기 쉽다. 자연스러운 예문을 추구한 나머지, 예문 작성에 있어서 어려운 어휘나 문법형식이 학습단계에 맞지 않게 미리 등장해 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 학습 단계를 엄밀히 지키지 않는 그러한 교재가 기존의 교재 중에는 대단히 많다.
 반대로, 교재는 알고 있는 사항에서 모르는 사항으로 학습항목을 단계적으로 제시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어휘나 문법형식을 마구 사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예문이 약간 어색하더라도 초보라는 명목 하에 부자연스러운 예문도 용인되기가 쉽다. 언어학적인 기초에 입각한 학습 단계를 엄밀히 지키려 하는 교재일수록 이런 문제점이 더러 눈에 띈다.
 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예문의 추구"와 "학습항목의 단계적 제시"라는 두 명제는 마치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힘든 작업일지언정 결코 이율배반은 아니다. "초보"라든지 "교과서"라는 조건은 면죄부가 아니다. 학습자에게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러운 예문을 체념하고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감수한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3-6-4. 단어의 substitution으로부터 발화의 simulation  으로
 위의 (5) 항목에서도 논한 바와 같이, 일본어화자가 교재의 저자가 되었을 경우에는 일본어로 직역하기 쉬운 문장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교재를 작성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학습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순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비롯하여 통사구조상의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학습의 진도가 나가면 나갈수록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순도 비슷하고 문장구조도 유사하나 직역을 하면 반드시 어색한 문장이 되기 마련이다.
 예문 작성에 있어서는 일본어 문장을 기준으로, 단어를 하나하나 한국어로 바꾸어 놓는 작업만 하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이런 경우에 모어화자라면 뭐라고 할까?"라는 발화의 현장을 상기하려는 태도가 기대되는 것이다. 문장의 일대일 번역 즉 축어역(word-for-word translation)을 할 것이 아니라 발화 현장에 자기 자신을 옮겨다 놓으려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단어의 기계적인 substitution은 상상력의 destitution(빈곤)으로 가는 길이다. 단어의 substitution으로부터 발화의 simulation으로 발상을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3-7. 학습자의 모어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언어 교재에 있어서 학습자의 모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어 학습에 있어서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가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한국어 교재 속에서 일본어를 얼마만큼, 어떤 형식으로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된다.
 학습자의 모어는 철저히 이용하자는 것이 본고의 입장이다. 직접교수법(direct method)으로 교실 운영을 관철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기술적으로 곤란할 뿐만 아니라 학습효과의 점에서도 의문이 많다. 직접교수법은 교실 운영의 일부에만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실 운영 전체, 교재 전체를 한국어만으로 통일하는 것은 학습자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이 된다. 교실에서는 한국어만으로 운영된다 해도, 집에서 사전 찾기와 문법 공부에만 쫓겨야 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교실에서 쌓인 의문을 학습자가 고독하게 집에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어와 한국어의 대조언어학적인 방향으로 흥미를 끄는 교재를 꾸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어 학습에 있어서 언어학적인 지적 흥미는 중요한 학습 요인이 될 수 있다.
 예문에는 자연스러운 일본어역을 붙여야 한다. 직역이 필요할 경우에는 아울러 제시하면 된다. 독해 연습을 목표로 하는 단원 이외에는 한국어와 일본어역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다. 번역 연습이 곧 기계적인 한국어와 일본어의 치환이 되어 버린다면 시간의 낭비이다. 기계적인 substitution으로 번역이 된다면 번역문은 미리 제시해 놓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전 찾기보다는 문장을 외우고 연습하는 데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멀지 않아 기계적인 번역이라면 일년 배운 학습자보다 만원, 이만원의 휴대용 음성 번역기 쪽이 더 쓸모가 있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한 기계적인 반복 작업만으로 학습자의 청춘을 허무하게 보내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언어 학습은 몸과 마음 속에 언어를 확고히 깃들게 하는 데에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3-8. 단원 구성의 문제
 교재 중에서도 특히 입문서의 경우에는 학습 단위 즉 단원을 무엇을 기준으로 구성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에 대하여서는 형태론, 문형, 표현의도 등등 몇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형태론을 중심으로 하되 개념적 학습안(notional syllabus) 혹은 기능적 학습안(functional syllabus)적인 발상도 가미한 구성이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표현의도만을 기준으로 개념적 학습안의 방식으로 입문서를 꾸미는 것은 일본어화자들에게 많은 형태론적인 어려움을 주게 되므로, 단원을 구성할 때에는 사실상 형태론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개념적 학습안의 방식은 어느 정도 학습의 진도가 나간 단계, 즉 어느 정도 기초적인 형태론을 습득한 단계에 이르러서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즉 중급 회화 교재나 작문 교재에서는 표현의도를 기준으로 단원을 구성하는 그러한 개념적 학습안에 따른 교재가 효과적이다.
3-9. 술어(術語)와 발음 표기의 문제
3-9-1. 언어학적인 술어의 사용은 최소한으로
 문법용어 등 언어학적인 술어는 초급에서는 최소한으로 그치게 하는 것이 학습자들의 부담이 적을 것이다. 쓸데없이 술어를 남용하는 것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단, 영어 문법과는 다른, "종성", "받침", "관형형(연체형)"등 한국어 특유의 술어는 어느 정도 용납되어도 무방할 뿐더러, 영어 등 서양어 문법 중심의 사고방식을 깨뜨린다는 의미에서도 의의가 있다는 점은 확인해 두고 싶다. 학습자의 혼란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문법서에 주요한 술어에 관하여 주요 문법 학설의 간단한 대조표를 붙이는 것도 시도하여 볼 일이다.
3-9-2. 발음 가나 표기의 문제
 발음의 가나(カナ) 표기에 있어서는 많은 회화서에서 혼란이 눈에 띈다. 원칙성이 없는 표기가 더러 있는 것이다.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교재를 보아도 몇 가지 다른 가나 표기를 볼 수 있다.
 간노[菅野裕臣] 외(1988)에서는 일본어를 표기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표기만을 인정한다는 원칙으로 한국어 발음 표기를 통일하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원칙적인 태도로, 표기상의 합리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돼"의 발음 표기가 "トゥウェ", "죄"가 "チュウェ", "입니다"가 "イムニダ", "권력"이 "クウォルリョク"가 되는 등, 일본어화자가 가나를 읽고 발음하였을 때에 실제 한국어보다 훨씬 음절수가 많아진다는 점이 아쉽다. 종성에 모음이 들어가기 쉽다는 것은 일본어화자들의 공통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권력"의 경우 5음절로까지 발음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조금이라도 한국어 발음을 가나에 반영시키려는 태도가 있는데, 말하자면 종성을 작은 글씨로 표기하는 등의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사전이긴 하나 오사카[大阪]外國語大學朝鮮語硏究室(1986)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사전에는 "ㄴ"과 "ㅇ"이외의 종성은 모두 작은 가나로 표기되어 있다. 단 여기서도 "죄"는 "チュウェ"가 되어 있다.
 權在淑(1992, 1995)은 한국어와 가나 표기 상호의 음절수를 감안, 큰 가나가 몇 개 있느냐에 의하여 한국어의 음절수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즉 한 음절을 구성하지 않는 가나는 모두 작은 글씨로 표기한 것이다. 이 방식으로는 "돼"의 발음 표기는 "トェ", "죄"가 "チェ", "권력"이 "クォルリョク"이 되어, 학습자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종성을 작은 글씨로 표기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흔히 있어 왔으나, 음절수와의 상관까지를 배려한 교재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權在淑(1992, 1995)에서는 종성의 "?"을 "ム"의 작은 글씨로 표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화자들이 구별하기 어려운 "ㄴ"은 가타가나로 "ン"으로 표기, "ㅇ"은 히라가나를 사용하여 "ん"으로 표기하고 있다. 물론 이 경우의 종성은 음절을 구성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작은 글씨로 되어 있다.
 한국어 발음을 가나로 반영시키려면 궁극적으로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섞어 쓰더라도, 또 다른 보조 기호를 아울러 사용한다는 등의 수단을 강구하여야 한다. 가나로 한국어를 정확히 표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쓸데없이 가나 표기를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나 표기는 어디까지나 발음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 수단, 즉 심히 잘못된 발음을 하지 않기 위하여 이용하는 보조 수단 정도로 생각하여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3-9-3. 발음기호의 문제
 최근에는 음성교재가 보급되면서 가나만으로 발음 표기를 하고 발음기호는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일본의 불어교재 등에도 보이지만, 이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이며 발음 공부를 학습자에게 완전히 맡겨 버리는 셈이 된다. CD로 소리를 들어도 못 알아듣기 때문에 발음기호가 필요한 것이지, 테이프가 있으니까 발음기호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도 보았듯이 한국어에 있어서도 발음을 가나로 표기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발음기호(IPA)를 사용하여야 한다.
 현행 교재에서는 몇 가지 발음 기호가 사용되고 있다. 朝鮮語學硏究會(1987:119)에는, 우메다[梅田博之](1985), 오사카[大阪]外國語大學朝鮮語硏究室(1986), 야스다[安田吉實] 외(1983)의 발음 기호 대조표가 있다. 이 중 야스다[安田吉實] 외(1983)는 이전의 문교부방식의 로마자 표기와 같은 것인데, 유성음과 무성음의 구별이 없다는 점, 농음을 유성음자로 표기한다는 점에서 일본어화자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발음기호는 가능한 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현 단계에서는 통일하기가 어렵고 또 억지로 통일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적어도 교재와 사전, 문법서의 세 가지 안에서는 통일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4. 형식의 문제
4-1. 교재의 형식 또한 내용이다
 책의 크기, 두께, layout 등을 비롯한 교재의 형식에 대하여서는 교재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아직 대단히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책을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는 편집자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 내용과 마찬가지로 책의 형식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완전히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제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어떤 의미에서는 교재야말로 편집 디자인(editorial design)의 궁극형태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학습자의 입장에 서서 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교재가 시중에서 판매될 경우 이 형식의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학습자의 교재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 교재를 학습자가 선택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학습자는 무의식중에도 형식도 내용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교재개발자는 형식이 내용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4-2. 형식에 있어서 고려할 문제들
4-2-1. 판형
 교재의 크기는 실제적으로는 B6(182×128mm), A5(210×148mm), B5(257×184mm), A4(297×210mm)중에서 택하게 될 것이다. 변형판은 다루기에도 정리하기에도 불편하다. 요사이는 A4로 모든 서류를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만, 교재는 가지고 다닌다는 점을 감안할 때 B6, A5, 아무리 크더라도 B5 정도의 크기로 하여야 할 것이다.
4-2-2. 두께
 두꺼운 것은 교실용 교과서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공포감과 절망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정복감을 예감할 수 있을 정도의 두께가 바람직하다. 무거운 것도 피하여야 한다. 자습서의 경우는 두꺼운 것도 괜찮다. 특히 참고서(reference)로서의 교재는 교사가 없어도 배울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 두꺼운 쪽이 좋을 것이다.
4-2-3. 제본
 소위 hardcover는 교과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paperback 쪽이 적합하다. 제본은 튼튼하여야하고 표지에는 PP(polypropylene)를 붙이는 등 학습자가 오랫동안 사용해도 책이 상하지 않는 궁리가 필요하다.
4-2-4. 표지
 표지의 디자인은 의외로 중요하다. 학습자의 교재 선택시, 말하자면 첫인상을 주는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교재는 너무나도 시대 감각에 뒤떨어진 것들이 많았다. 앞으로는 젊은 학습자들이 가슴에 품고 있어도 어울리는 선진적인 디자인을 추구하여도 좋을 것이다.
4-2-5. 목차와 색인
 목차와 색인은 학습자가 검색을 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무엇보다도 기능성 면에 있어 가장 충실해야 한다. 색인이 없는 것은 교재로서의 자격이 없다. 중요 항목의 색인뿐만 아니라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색인까지 있다면, 학습자에게 아주 유익할 것이다. 단어의 용법을 금방 검색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4-2-6. layout
 시각에 대한 배려와 기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린다. 특히 여백의 의의를 인정하여야 한다. 공간적인 여유는 심리적인 여유를 가져다준다. 강약, 변화가 있는 레이아웃이 학습의 성취감에 도움을 주며 기억에도 도움이 된다.
 한 단원은 너무 길면 안 된다. 여기서도 학습자의 성취감을 고려하여야 한다. 단원마다 그 내용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제목을 붙인다. 표제 역시 한국어와 일본어를 병기했으면 한다. 예문과 단어의 풀이는 같은 페이지 내지는 좌우의 페이지에 있는 것이 좋다.
4-2-7. 글씨
 입문서에서는 작은 한글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흔"과  "혼", "벌"과 "별", "외대(外大)"와 "의대(醫大)"와 "위대(偉大)"의 구별 등은 어휘수가 적은 학습자들에게는 의외로 어려운 것이며, 그런 점에서 학습자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나를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かんこく(강코크:한국)"와 "かんごく(강고크:감옥)", "れいせつ(레이세츠:예절)"와 "わいせつ(와이세츠:외설)"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초보자에게는 한글은 기호나 도형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교재 개발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큰 활자를 사용하여 일점, 일획을 소중히 다루는 습관을 길러야 된다. 덧붙여 말하면, 사전 역시 글씨는 커야 한다. 글씨가 작아 눈을 버려 가며 책에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출판계이지만, 사람이 물건에 맞출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람에게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4-2-8. 서체
 서체에도 강약, 변화가 요구된다. 중급에 있어서는 필기체 글씨의 독해를 배우는 단원이 있어도 좋다. 활자는 읽을 수 있어도 펜으로 쓴 편지는 못 읽는 학습자가 많다.
4-2-9. 색깔
 인쇄는 단색이냐 2색 인쇄냐 하는 문제가 있다. 무조건 색칠만 하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디까지나 색깔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기법에 달려 있다.
4-2-10. 삽화
 삽화(illustlation)는 안이한 것들이 많으나,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고유의 문화 등을 소개하는 삽화는 정확하게 그려야 한다.
4-2-11. 시청각 교재
 서적 형식의 교재에는 반드시 CD 등 음성 교재가 함께 개발되어야 한다. 녹음자는 남녀의 전문가를 적어도 두 명은 기용하고 싶지만 일본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다.
 독립된 시청각 교재로서는 아직 시청각 교재로서의 이점을 충분히 살린 것이 드문 것 같다. 음성 교재에도 아직 큰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교재 개발자들의 상상력의 빈곤으로 인해 그냥 본문을 녹음하는 식의 단순한 것들밖에 없는 것 같다. 컴퓨터를 이용한 CD-ROM이나 소위 멀티미디어(multimedia) 교재에서는, 정보가 일방통행인 비디오보다도 훨씬 큰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청각실(LL)이 있어도 별로 이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교사의 부담이 큰 시청각 교재는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는 그 보급도로 보아 앞으로의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청각 교재는 그것이 단순히 시청각 교재라는 것만으로 존재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논의해 온 교재 개발의 전체적인 사상과 방법의 뒷받침이 있어야, 비로소 그 시청각 교재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5. 마무리
 지금까지 바람직한 교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여 보았다. 마지막으로 본고에서 논한 근본적인 사상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본고를 마무리짓기로 한다.

   (1) 학습자의 모어를 살릴 수 있는 교재이어야 할 것
 학습자의 모어를 고려함 없이 한국어 교재를 획일화하는 것은 매우 비능률적이고 또 비인간적이다. 모어와의 차이의 구명(究明), 모어와의 간섭의 수정 등을 비롯한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모두 학습자 개인에게 일임하여 버리는 결과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직접교수법(direct method) 일변도의 한계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평가는 어느 정도까지는 획일화할 수 있어도, 교재는 모어에 대한 고려 없이 절대로 획일화할 수 없다. 모어와 학습어의 대조언어학적인 지적 즐거움도 귀중한 성과이며, 또 학습의욕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큰 동기가 된다.

   (2)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을 위한 언어 학습 교재이어야 할 것
 일본에서는 "읽는 영어"냐 "말하는 영어"냐 하는 논쟁이 있는데, 여기에는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외국어 교육이라는 전통, 지적인 훈련으로서의 외국어 교육이라는 전통과 "영어의 국제어화"라는 언어제국주의적인 명제가 그 저변에 깔려 있다. 본고의 입장은 "읽는 한국어"이자 "말하는 한국어", 동시에 "쓰는 한국어"이기도 하고 "듣는 한국어"이기도 하여야 한다는, 지극히 원칙적이고도 욕심이 많은 목표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중에서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느냐 하는 것은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학습목적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할 일이다. 대학의 전공교육에서는 당연히 "읽는 한국어", 지적 훈련이라는 측면을 최대한으로 살려야 한다. 정확히 그리고 깊이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폭넓고 단단한 한국어 실력을 기를 수가 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말하는 한국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아주 깊은 곳까지 얽혀 있으며 한국어화자와 일본어화자는, 일본에서는 다른 그 어느 언어보다도 자리를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을 빼고는 한국어 교육을 논할 수 없다. 만남이 있다면 그 만남의 현장이야말로 한국어가 숨쉬고 살아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안녕하세요?"라는 한 마디가 그 만남을 얼마나 따뜻하게 해 주는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배운 것은 즉시 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예문의 추구는 여기서도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어 교재 중에는 때때로 한국어의 "욕"을 득의양양하게 해설한 것들이 있다. 마치 욕을 사용어휘로 할 수 있어야 진짜 한국어 실력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욕을 배워 써먹을 수 있는 상대가 누구냐는 점을 생각한다면, 욕 대신에 한 편의 시에라도 접하게 하는 것이 교재라는 것의 사명일 것이다. 욕은 몰라도 창피할 것이 없다. 욕을 퍼붓고 싶은 장면에 부닥쳤다면 그때야말로 이지적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언어 실력이란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위한 언어 교육이라는 사상은, 득의양양하게 욕을 가르치는 사상과도 결별해야 하는 품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3) 학습 단계와 도달도를 철저히 고려한 교재이어야 할 것
 교재는 가르치기에 편할 뿐만 아니라 학습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강조하였듯이 학습 단계와 도달도를 철저히 연구하여야 한다.

   (4) 언어학적인 연구가 뒷받침된 교재이어야 할 것
 지금까지 논하여 온 문제들은 그 모두가 언어학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것도 문법 현상을 그저 해석만 하는 연구가 아니라 한국어의 다양한 언어사실에 입각한 연구이어야 한다. 연구자의 머리 속에서만 개념장치를 가지고 노는 식의 연구는, 실제 언어 교육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피상적으로 나열한 "대조연구" 역시 교육의 현장에는 무용지물이다. 어휘든 문법이든 과제는 많다. 해결이 안 된 문제가 교육의 현장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앞으로는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철저한 언어사실주의적인 한국어 연구만이 참된 한국어 교재의 힘이 되어 줄 것이다.

   (5) 학습자의 뜻에 보답하는 교재이어야 할 것
 대학을 비롯한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학습자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독학을 하는 고독한 학습자의 존재를 우리는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된다. 스승을 만나지 못해서 아주 사소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고민하는 고독한 학습자의 존재를 상기하여 보자. 3세·4세로 내려오면서 재일 교포들조차도 주위에서 한국어의 스승을 만나기가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화자와의 만남의 기회는 해마다 늘고 있다. 배우겠다는 학습자의 뜻, 그 정성에 교재는 반드시 보답하여야 한다. 교재의 형식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나, 그것은 학습자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학습자가 교재와 친해지기를 바람과 동시에 학습의 뜻을 고무하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교재는 어김없이 ideology의 산물이다. 거기에는 교재를 엮는 자의 나태와 교만이 다 드러난다. 학습자를 경시하고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경시할 경우, 교재의 여기저기에 그것이 엿보이게 되는 것이다. 교재는 늘 연구자와 교재 개발자의 정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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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The Six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Language Education (IAKLE)에 있어서의 발표요지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조준학 회장님, 성기철 부회장님을 비롯한 IAKLE 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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