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대부분의 재일교포 가정이 그렇겠지만 우리 집의 일상생활은 일본말로 영위된다. 우리 아버지(고인)는 1세 교포, 어머니는 2세 교포이기 때문에 집 안에서 우리말을 써도 될 듯한데 왠지 모르게 전부 다 일본말이다. 어렸을 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집 안에서 우리말을 쓸 때라면 부모님이 나에게 비밀로 모슨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할 때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정정을 해야 할 게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부 다" 일본말이 아니라 아주 일부분의 단어만은 우리말을 쓴다. 그것도 그 단어들은 또 왠지 모르게 항상 우리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다른 재일교포 가정에서도 어떤 종류의 단어들은 항상 우리말을 쓰는 것 같다. 물론 집 안에서 쓰이는 단어의 종류는 각 가정마다 차이는 나지만 대강 비슷비슷한 단어들을 우리말로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 조가의 경우를 예로 재일교포 집의 한국어의 모습을 엿보기로 하자.

한매
 우리 외할머니(고인)는 몇년 전까지 가나가와현(神奈川縣) 가와사키(川崎)의 소위 "조선부락"에 사셨는데, 할머니를 나는 "한매"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친족 호칭을 우리말로 하는 집은 많은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한매" 이외에도 외삼촌을 "아재", 외숙모를 "아지매"라고 부르지만, 내 친구를 보면 "할배", "큰아부지", "큰어매" 등도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런 단어들은 여러 분 잘 아시다시피 표준어가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다. 재일교포는 9할이 남한 출신이고 그 대부분이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출신이다. 특히 경상도 출신자는 지리적으로 일본에서 가까운 관계로 가장 비율이 높다. 그래서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쓰이는 것이다. 우리 집은 아버지는 충청도 출신이지만 어머니가 경상도 출신으로, 그 어머니가 당신 친족을 부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도 부르게 된다. "할배"는 "하루배", "하이배"라고 부르는 집도 있다. 일본말에는 "ㄹ"받침 소리가 없기 때문에, 평소에 일본말을 하는 교포들이 발음하기 쉽게 일본어 식으로 고쳐 발음하는 것이다.
 친족 호칭이라 해도 부모 형제 등은 일본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1세 교포에 대해서는 우리말 호칭으로 부른다. 역시 제1언어가 한국어인 세대는 우리말로 불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사스루
 어렸을 때 할머니네 집을 찾아가면 어머니는 언제나 "한매니 챤또 인사스룬다요(할머니한테 인사 잘 드려라)"라고 하셨다. "인사"라는 말은 "아이사쯔"라는 일본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할 때는 꼭 "인사"라는 우리말로 하신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니까 "人事"라는 것이 동방예의지국답지만 어린 나는 그런 뜻을 알지도 못하고 할머니네 집에 가서는 "인사"를 꼬박꼬박 했었다.
 여기서는 "아이사쯔"가 아니라 "인사"라는 점이 중요하다. 할머니한테 인사를 올릴 때는 꼭 우리말이다. 우리말로 인사를 올리니까 "인사"인 것이다. 할머니네 집에 가면 "안녕하심미까" 하고 인사를 올리고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면 "잘 오셨슴미다" 하고 인사를 올리고, 무엇을 받으면 "고맛슴미다"라고 말을 한다. 발음이 "안녕하십니까"가 아닌 것도 중요하다. 일본말에는 "십니"라는 발음이 없다. 그렇다고 진짜 일본사람처럼 "안녕하시무니까"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색하다. "시무니까"라고 발음하는 것보다는 "심미까"가 더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발음했을 것이다. 또 "하다"란 동사는 쓰지 않고 그 대신 같은 뜻의 일본말인 "스루"를 붙여서 "인사스루"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나는 어렸을 때 우리말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어떤 인사말을 올리느냐 하는 것은 전부다 암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멀리 사시는 할머니를 만나뵈어 인사를 올릴 기회가 그리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꾸자꾸 잊어 버리는 것이다. 특히 할머니와 헤어질 때에 어떨 때는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하고 어떨 때는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헷갈려서 좀처럼 외우질 못했다.

변소
 지금 "변소"라는 말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거의 쓰지 않지만 재일교포들은 이것을 한국어로 "변소"라고 할 경우가 많다. 아마 식민지 시대부터 그렇게 해온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재일교포 사이에서는 이와 같이 본국에서 쓰지 않게 된 말들을 아직도 쓰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반신 이야기를 할 때는 왠지 우리말이 많아진다. "변소" 뿐만 아니라 "오줌", "똥"도 쓴다. 내가 대변이 마려운데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지구전을 벌이고 있으면 "똥 시따이까라 하야꾸 변소까라 데떼요(똥 마려우니까 빨리 화장실에서 나와줘)" 하고 당부했었다. 대변과 소변에 대한 동사는 "누다"를 쓰지만 우리 집에서는 일본말 "스루(하다)"를 붙여서 "똥 스루", "오줌 스루"라고 한다. "목욕하다"도 "목간니 하이루(목간에 들어가다)"라고 짬뽕으로 말한다.
 하반신 이야기라면 당연히 남성기, 여성기로 화제가 간다. 이것 역시 예외가 아니고 우리 집에서는 "자지", "보지"라고 말한다. 이 두 단어는 너무 직접적인 표현이라 만약에 한국에 있으면 사람 앞에서는 도저히 입에 올릴 수 없지만 일본에서 살다 보니 이 말들을 일본말에 섞어서 쓰면 참으로 편리한 은어로서 주저없이 쓸 수 있다.

볶아스루
 우리말과 일본말은 문법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말을 해도 명사는 쉽게 우리말로 바꿔서 섞어 쓸 수 있지만 동사는 활용체계가 약간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바꿔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1세들은 동사의 "-아/-어"형에다가 일본말의 "스루(하다)"를 붙여서 짬뽕말을 만드는 발명을 한 것이다. 따라서 "볶아스루"는 "볶다"라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생활의 지혜라고 할까,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할까, 언어의 신비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동사들은 특히 요리에 관한 단어에 많다. "볶아스루" 이외에도 "말아스루(말다)", "비비스루(비비다)", "문치스루("무치다"의 경상도 사투리 "문치다"에서)" 등을 쓰고 있다. "비비스루", "문치스루"의 "비비", "문치"가 "-아/-어"형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이것도 경상도 사투리다. "비벼", "문쳐"처럼 "ㅕ" 소리가 나는 것은 경상도 사투리로는 그대로 "ㅣ"가 된다.
 더 경이로운 일은 맛을 나타내는 형용사에도 "스루"를 붙여 짬뽕말로 한다는 사실이다. 일본말의 "스루"는 동사임에도 불구하고 형용사에 이 "스루"를 붙인다. 예를 들면 "시다"는 "시스루", "싱겁다"는 "싱그부스루(여기서도 경상도 사투리가 나타난다)"로 말한다. 동사든 형용사든 간에 "스루"를 붙이는 일은 동사와 형용사의 활용체계가 동일한 한국어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1세들의 언어감각도 대단하다(?).
 "-아/-어형 + 스루"로 내가 가장 인상이 깊은 단어는 "삐끼스루"이다. "삐끼"는 "삐지다"의 경상도 사투리인 "삐끼다"에서 온 말이다. 나는 이 단어를 초등학교에 입할할 무렵까지 계속 일본말인 줄 알았다. 유치원 친구에게 "삐끼스루나요(삐지지마)" 하고 말을 건 기억이 있다. 그 애는 내 말을 이해했을까?

바보축구
 "변소"의 경우도 그랬지만 그다지 품위가 없는 말을 할 때는 우리말이 많아진다. 일상생활을 일본말로 지내다가 사람 앞에서 입에 올리기 힘든 말이 있으면 그것을 우리말로 하는 것 같다. "바보축구"도 마찬가지다. 이 말의 "바보"는 어렸을 때부터 뜻을 알고 있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축구"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몰랐다. 사전을 찾아 보아도 스포츠의 축구란 뜻밖에 없고 우리 나라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느 정도 한국어의 지식을 쌓은 후에도 역시 무엇인지 의연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한국 유학 중에 얼떨결에 부산 사람과 우리 집 한국말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겨 "바보축구"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네 집에서도 말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축구"는 분명히 스포츠의 "축구"지만 왜 "축구"란 말이 붙어 있는지 그 사람도 모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확실히 "바보축구"라고 한다고 했다. 30년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풀린 순간이었다. 참 기분이 좋았다.
 나 자신은 쓰지 않지만 부모님이 자주 쓰는 말도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화낼 때는 항상 "이놈자식"이란 말로 시작했다. 당시는 뜻을 몰랐지만 그 말만 들으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껴 덜덜 떨었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집의 한국말은 경상도 사투리를 농후하게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충청도 출신이기 때문에 좀더 충청도 말이 반영되어도 될 법한데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은 아버지 단 한분 뿐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와 반대로 어머니는 부모 형제가 일본에서 살며 다 경상도 말을 (정도차는 있지만) 구사하기 때문에 경상도 사투리는 쉽게 우리 집 안에까지 침투된다. 결국 우리 집의 한국말은 "조가의 한국어"가 아니라 "이가의 한국어"였던 것이다. 아아 무서워라, 어머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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